「뉴키즈 소동」누구 책임인가/채규진 문화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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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6일 「뉴키즈 온더블록」의 서울 도착으로 10대들에게 휘몰아친 광풍은 무엇으로 설명하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60,70년대 퇴폐적·저항적 팝 문화에 접하며 성장한 기성 세대도 이날 공항과 「뉴키즈」의 숙소에서 벌어진 광경을 보고 『도대체 「뉴키즈」가 뭐길래… 』라는 탄식을 되뇌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양순하고 공부 많이 하는 우리의 여중고생들이 꼭두새벽부터 심야까지 공항·호텔에 몰려가고,「뉴키즈」를 봤다는 기쁨과 얼굴한번 못봤다는 서운함에 대성통곡한다.
귀가 찢어지는 괴성과 함께 『아이 러브 유 뉴키즈』를 연발하는 소녀들에게 『좋아하는 건 좋지만 너무 하지 않는가』라는 단순한 대응과 『우리 딸은 안그렇겠지』식의 안이한 자세는 10대들의 광란에 대한 아무런 해답이 되지 못한다.
맹목적이고 즉발적인 소용돌이에 휩쓸린 철모르는 소녀들은 어쩌면 책임이 덜할지도 모른다.
이토록 10대들의 광기가 폭발할때까지 어른들은 「뉴키즈 온더블록」이라는 짧지않은 이름이 무슨 장난감 이름처럼 들렸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문화는 변화에 앞서는 10대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
어른들은 소녀들에게 「뉴키즈」는 결코 「비틀스」만큼 혁신적인 음악을 창조하지 못했고,60년대말 록음악처럼 저항의식이 없다고 가르쳐주지 못했다.
어른들은 「뉴키즈」가 미국 대중문화 생산구조의 대표적인 산물로 실제 정서적인 즐거움만큼 나중에 남는 것은 없다고 설명하지도 못했다.
복잡한 이야기 할 것없이 「뉴키즈」류이외의 창조적·문화적 정서를 제공해줄 수 없을만큼 기성세대는 빈곤하다.
우리 소년소녀들에게 우리의 정서가 담긴,또 젊은세대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청소년문화를 제공하지 못한 것이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공부하라』고 강요만 해놓고 그들에게 맞는 문화향수의 기회를 주지않고 대화도 하지 않은채 그들을 팽개쳐버렸다.
방 속에 꽁꽁 묶여 「워크맨」을 귀에 꼽고 방송·잡지·비디오·디스크 등을 통해 쏟아지는 외국대중문화에 무비판적으로 몰입하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공항바닥에 쓰러져 자신들의 몸위를 지나가는 「뉴 키즈」의 발이라도 잡아보려고 이마에 흐르는 피도 닦지않는 소녀,경남 창원에서 학교도 가지않고 서울로 와 새벽2시부터 「뉴키즈」를 기다렸다는 소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성세대들은 자신이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뼈저리게 반성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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