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세태 러브스토리로 투영〃|본지 새 연재소설 『무지개…』작가 송영 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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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본지에 장편『무지개가 머무는 곳』을 20일(일부지방 21일)부터 연재할 송영씨(52)는 기자와 만나자마자 구파발 부근으로 나가보자고 한다. 지하철 3호선은 양재를 출발, 압구정·충무로 등 욕망을 들끓게 하는 도심을 땅속으로 통과한다. 그리고 화원들의 비닐 하우스만 흩뿌려놓은 구파발 근처에서 솟아올라 이내종점 지축 역에 이른다. 도심의 욕망과 곧바로 연결돼 있으면서도 황량하기 만한 그 구파발 풍경을 보고싶다는 것이다.
『서로를 소모시키는 현대사회의 구조 속에서 어디 한군데 안식처 찾기가 힘듭니다. 아무렇게나 들어선 저 하얀 비닐 하우스들의 난잡한 풍경들이 오히려 포근하게 보일 때가 많습니다.』
꽉 들어찬 아파트 군, 나의 지위는 무엇이고 나이는 얼마이니까 그에 걸맞은 아파트평수, 진정한 중산층도 아니면서 이제 상류층으로 행세하려는 물신풍속 등 뿌리도 없이 지나친 상승만 꿈꾸게 하는 현대도시의 삶. 그러나 바로 그 상승에 대한 꿈이 인간사회를 끊임없이 마모시켜가고 있다는 것이 송씨의 생각이다.
『흔히 삶을 생존경쟁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어디 서울의 대부분의 삶이 먹고 입고 어떻게든지 살아남아야겠다는 그야말로 절박한 생존경쟁입니까. 차라리 욕구·욕망의 경쟁이라 하는 것이 낫겠지요. 이러한 경쟁 때문에 우리의 영혼은 얼마나 삭막해졌거나 상처를 받고 있습니까.
『무지개가 머무는 곳』은 이러한 우리의 삶을 가감 없이 묘사해냄으로써 현대인의 진정한 삶의 가치, 그리고 윤리·애정관을 독자들과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무지개가 머무는 곳』의 주인공은 30대 중반 샐러리 맨. 가정과 직장이 있으면서도 뭔가를 찾아 끊임없이 떠돌게 된다. 옛 애인이었던 무용수, 연상의 중산층 이혼녀, 그리고 빈민계층의 20대 처녀사이를 맴도는 주인공을 통해 송씨는 오늘 우리자신들의 삶의 실체를 발가벗기게 된다.
한편 각 계층 여성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꿈과 현실을 통해 이 시대의 진정한 가치관을 모색해 본다.
『주인공은 이 지하철을 타고 압구정동 등 강남도 드나들 것이며 또 구파발의 화원도 오갈 것입니다. 거미줄 같이 얽힌 복잡한 도시지만 지하철이 명쾌하게 주파하듯 내 작품 또한 복잡다단한 현대인의 삶의 정곡을 소설방법론으로 파고 들으려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그려놓은 풍속도를 남이 되어 들여다보는 재미와 함께 회한도 느껴봅시다.』
송영씨는 당초 구상했던 소설제목『무지개가 끝나는 곳』을『무지개가 머무는 곳』으로 바꾸기를 희망했다. 송씨는『미국시인 로버트 로웰의 널리 알려진 시제목이『무지개가 끝나는 곳』이어서 동명소설도 있고 「끝나는 곳」보다는「머무는 곳」이 이번 소설이 표현하려는 것과 맞아든다』고 개제의 뜻을 밝혔다.
송씨는『무지개는 중산층의 허황한 상승욕구를 상징하는 뜻으로 썼는데「끝나는 곳」은 자칫 그들의 파탄을 강조하는 측면이 두드러진 느낌을 준다』면서 『좀더 그들의 모습을 현장에서 사실적으로 그린다는 의미에서 「머무는 곳」으로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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