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감정”이냐 “폭로공방”이냐/국과수 뇌물의혹수사 3갈래 방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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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①이세용씨가 뇌물주고 허위감정 부탁/②이창렬씨 측근의 허위제보 반격작전/③국과수 속일만큼 위조 완벽했을 수도
국과수 뇌물의혹사건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 사건의 발단이 소송에 얽힌 당사자들의 감정다툼이었음이 드러나 허위감정이란 사건의 본질보다 배경·배후세력 등 주변상황에 오히려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사건을 언론에 제보한 측은 국과수의 뇌물감정으로 진실이 뒤바뀌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국과수와 상대방은 오히려 제보한 측이 언론을 등에 업고 자신들의 불순한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고 역공을 펴고 있다.
국과수의 위상과 공신력 실추를 생각할때 이제는 국과수가 금품을 받고 의도적인 거짓감정을 해왔느냐의 여부에 관계없이 이미 제보자는 어느 정도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검찰수사가 국과수관계자의 뇌물수수여부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어 허위감정여부는 뒷전으로 밀린 듯한 인상이지만 사건은 ▲제보자의 주장대로 국과수를 소송의뢰인들의 청탁을 받고 엉터리 감정을 해줬거나 ▲정반대로 제보자가 소송라이벌과 여러차례 자신에게 불리한 감정을 한 국과수을 한꺼번에 상처입히기 위해 허위제보를 했을 경우 ▲필적과 지문의 위조는 사실이지만 워낙 정교해 국과수가 이를 밝혀내지 못했을 가능성등이 점쳐지고 있다.
사건을 요약,세가지의 시나리오를 엮어본다.
◇허위감정=뇌물수수혐의로 지난해 9월 구속된 이창렬·한치준씨,조병길씨와 일부 사설감정사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대전의 이세용씨가 요청한 몇건의 국과수 감정결과가 항상 이씨의 승리로 끝난 것이 이같은 흑막의 증거라고 보고 있다.
이중 조병길씨는 사설감정사들로부터 『국과수에 감정과 관련,뇌물을 줘왔다』는 녹음까지 따냈었으나 이들 감정사들은 검찰이 수사를 벌이자 『감정의뢰인에게 내가 국과수에까지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한 말일뿐』이라며 뇌물공여부분을 부인하고 있다.
검찰은 사설감정사 신찬석씨(67)로부터 『국과수의 김형영씨가 전주에 내려왔을때 여비조로 35만원을 준 적이 있다』는 진술을 받아냈으나 신씨는 『이돈을 장거리 출장감정에 대한 인사의 표시였지 감정과 관련해 주고받은 것이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허위제보=제보자측과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는 대전의 건설업자 이세용씨는 『이 사건은 국과수의 감정결과에 따라 구속된 이창렬·한치준씨의 측근인 조병길씨 등이 꾸며낸 조작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건설업자 이씨는 『이창렬씨 등이 구속될 당시 이씨가 쓴 각서가 진본이라는 판정은 처음에는 대검 과학수사운영과에서 했으며 이씨측이 사설감정사등을 동원해 계속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법원이 국과수에 최종판정을 의뢰했던 것』이라며 『국과수가 허위감정을 했다면 대검 과학수사운영과에서 먼저 실시한 감정결과와 같은 것은 무엇 때문이냐』고 반문했다.
이씨는 또 『조씨측은 내가 여러차례 국과수를 이용해 소송에서 이겼다고 말하고 있지만 소송상대방인 이창렬·한치준(이상 구속중)·조병길·임봉규·양승학씨 등이 모두 한편이어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국과수의 김형영 실장은 『감정결과가 영구보존되어 증거가 명백히 남는데 흰것을 검다고 하는 정반대의 판정을 어떻게 내릴 수 있겠느냐』며 『대전의 이세용씨로부터 뇌물을 받기는 커녕 단 한번도 만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구속된 이창렬씨 등을 석방시키기 위해서는 소송을 건 대전의 이씨와 국과수 모두에 상처를 입혀야 하기 때문에 이같은 주장을 했다는 반박이다.
대전의 건설업자 이씨는 오히려 『89년 12월 당시 공화당 중앙위원이던 이창렬씨와 한치준씨를 고소하려 하자 조직폭력배 김태촌이 찾아와 고소하지 말라고 협박했으며 구속된 한씨의 외사촌형인 K의원이 국회에서 한씨의 구속을 문제삼고 나오기까지 했었다』고 주장했다.
◇완벽한 위조=만일 국과수가 허위감정을 한 것이 아니고 구속된 이창렬씨 등도 자신들 주장대로 각서를 쓴 적이 없다면 대전의 건설업자 이씨가 완벽하게 인장과 글씨를 위조했다는게 된다.
서울경찰청은 이창렬씨가 구속된 뒤 지난해 10월 「이세용씨를 우두머리로 한 7명안팎의 인장위조단이 있다」는 익명(이창렬씨 측근 추정)의 진정에 따라 뒤에 가혹행위로 물의를 빚은 조남근씨 등 피진정인 5명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가 지난달 17일 별다른 혐의를 찾아내지 못한채 검찰의 지휘를 받아 일단 수사를 중단한 상태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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