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이 보장돼야 민주사회/전육(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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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년여의 미국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정호용씨가 14대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대전서갑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으로 갈때는 물론 귀국자체가 관심을 끌었던 그는 『이번 만큼은 꺾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우리나라 정치의 이중성과 6공정부와 정씨와의 특수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이 들으면 도무지 알수 없는 언행이 아닐수 없다. 여기가 노벨평화상 수상자에게 출국을 금지시킨 미얀마도 아니고,정씨는 이멜다 마르코스처럼 추방된 정객이거나 정권에 위협을 주는 이념적 도전세력도 아니기 때문이다.
○비정상적 정치현상
정씨는 사상초유로 민주화되었다는 정부의 여당편에서 짧게 국회의원을 하다가 도중하차한 한 정치인일 뿐이다. 그가 물러난 것도 독재권력에 도전했다거나 자기가 몸담고 있던 정파 또는 정부와 노선투쟁을 벌여서가 아니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광주문제의 정치적 책임을 진 속죄양 또는 TK라는 권력엘리트간의 세력다툼에서 밀려난 존재였을 뿐이다.
그런 그가 귀국했다해서 권력기관이 24시간 미행하고,그로 인해 그는 마치 탄압받는 정치인인 것처럼 부각되고 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정씨가 왜그런 존재여야 하는지 정확히 그 이유를 모른다. 가만히 버려두면 특별히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될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요란스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것 자체가 어쩌면 비정상적인 현상인지 모른다.
그런데도 그의 출마선언은 대단한 결심인것처럼 비쳐지고 있다. 매스컴의관심은 말할것도 없고 일반국민들간에도 적지않게 흥미거리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반응과 의문은 여러갈래인 것 같다. 도대체 누가,왜 출마를 못하게 하는 것인가에서부터 정씨가 과연 출마해 끝까지 버틸수 있을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정씨의 존재가 이렇게 된데는 물론 몇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는 많은 국민들이 그가 「제거」된 과정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소위 TK헤게모니 싸움에서 그를 배제하려는 세력과 5공청산의 속죄양을 만들어야 했던 여소야대하에서 야당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그는 추방됐다는 것이 정가의 정설이다.
○곡절많은 출국과정
왜냐하면 당시 정씨를 축출한데는 노태우 대통령의 친·인척인 김복동·박철언씨와 지금 TK실세로 자리를 굳힌 김윤환씨(당시 민정당 총무)의 역할이 컸고,정씨의 퇴진을 표적으로 조준해 줄기차게 요구한 사람이 김대중씨(당시 평민당 총재)였기 때문이다.
89년초 노대통령이 당시 제1야당인 김대중 평민당총재의 협조를 얻어 중간평가연기(취소)를 결정한직후 광주문제와 관련해 군부관계의 인책문제를 제일 먼저 공개적으로 제기한 사람은 김복동씨였다. 그는 외신기자클럽에서 『자발적으로 나서서 죄를 시인하라』며 광주항쟁 당시 특전사령관인 정씨를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에 김대중씨가 맞장구쳤다.
정씨는 『지휘계통의 책임은 묻지 않고 지원부대장이었던 나만 광주사태의 책임을 지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논리와 김대중씨에 반발하는 TK주민의 정서,이 지역출신 의원들의 압도적 지원을 업고 꽤 줄기차게 버텼다.
그는 김대중씨와 함께라면 물러나겠다고 했다가 박철언씨(당시 정무장관)가 정치·도의적인 책임론을 들고나오자 법률로써 나를 보호하지 못하는 정권은 존재이유가 없으며 나에게 광주사태 발포책임을 뒤집어 씌우면 군부가 가만히 있지않을 것이라는등 사뭇 노정권에 위협조로 맞섰다. 그는 대구에서 군중집회를 열어 항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역부족이었다. 30여명 서명의원의 뒷받침이 있었지만 정씨사퇴→전두환씨 국회증언→특위종결로 5공청산 수순을 야당과 합의한 청와대는 정씨를 희생양으로 지목,온갖 압력과 설득으로 정씨와 주변을 포위해 들어갔다.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던 정씨의 기를 결정적으로 꺾은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정씨 개인의 약점때문이라는 얘기도 있고 더이상 버티다가는 너무많은 주변의 피해자를 낼것 같아 물러섰다는 얘기도 있다. 아무튼 그무렵 정씨는 공개리에 미행당했고 이듬해 3당통합후 실시된 보궐선거에 출마했다가 다시금 좌절했다. 부인이 자살소동을 빚고 그자신은 『죽는다면 모를까,출마포기는 않겠다』고 했지만 끝내 『앞으로 정치에서 손떼겠다』는 말을 남기고 미국행비행기에 올랐다.
정씨의 정치적 곡절에 가해진 권력의 압력,용기도 명쾌한 해명도 없이 도전과 좌절을 되풀이했던 그의 행태는 분명히 우리정치의 이상기류를 대변하고 있다. 이 정부가 말로는 민주화한다면서 정치내부에선 권위주의시대의 인위적 공작을 되풀이하고 있지 않느냐는 의심을 많은 국민들은 정씨사태를 통해 느끼는것 같다. 이주일씨의 출국등 제2,제3의 정씨가 생길 조짐이 전국도처에서 눈에 띄기 때문이다.
○민주의 핵심은 공정
정씨의 경우가 한 예이지만 권력주변에 있던 사람일수록 고통을 수반하는 개인적 약점앞에 정치적 대의가 꺾어지는 모습을 종종보게 된다. 그것은 기득층의 도덕성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반대로 어떤 형태든 형사소추되지 않은 정치인의 비리가 국민의 심판에 우선해 경쟁의 공정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면 그것 역시 큰 문제가 아닐수 없다.
그런 점에서 노대통령이 지난 선거때 공약한 말을 상기하게 된다. 『민주정치의 핵심은 국민의 공정한 심판앞에 누구나 자유롭게 나설수 있는 경쟁성에 있으며 경쟁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라는 말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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