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늦어도 추석 전 수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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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5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축산물등급판정소 직원이 국내산 쇠고기의 등급 판정 작업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됐지만 쇠고기는 한.미 간에 여전히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미국 측이 쇠고기 전면 개방을 FTA 협정 서명과 연계하겠다며 노골적인 압박을 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측 입장은 어정쩡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합리적 절차와 기간'을 거쳐 개방하겠다고 약속했다. 반면 농림부는 여전히 자체 위험 평가를 거친 뒤 개방하겠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늦어도 추석 전까지 미국산 쇠고기를 개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연말까지 미국 쇠고기 수입을 미뤘다간 대선 정국에 휘말려 정치 이슈화될 수 있다"며 "그렇다고 검역 절차를 생략할 수도 없기 때문에 가급적 절차를 서둘러 추석 전에는 미국 쇠고기가 시장에 풀리도록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밝혔다.

◆ 헷갈리는 한국 입장=박홍수 농림부 장관은 4일 국회 농해수위에 참석해 노 대통령의 언급이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결론이 나온 뒤 과학적 절차를 밟아 처리하겠다"는 기존 입장과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한.미 FTA 농업분과장을 맡았던 배종하 농림부 국제농업국장도 "쇠고기 광우병(BSE)과 관련된 검역, 수입위생조건 절차에 대해 미국에 시한을 약속한 바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OIE의 판정이 나오더라도 우리 측 검역 절차를 거쳐야 수입을 허용할 수 있다는 기존 농림부 입장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사뭇 다른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권 부총리는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그동안 많은 자료 축적이 있었고, 서로 논의가 진행됐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검역 절차를 거치되 통과의례 정도로 간소화하겠다는 얘기다.

◆ 어떤 절차 밟아야 하나=우선 쇠고기에 대해 한.미가 체결한 '수입위생조건'을 개정해야 한다. '뼈 없는 쇠고기'만 수입할 수 있게 돼 있는 현재의 수입위생조건을 개정해 갈비 등 '뼈 있는 쇠고기'까지 수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OIE 총회에서 미국이 '광우병 위험이 통제되는 국가'라는 평가를 받으면 미국은 부위나 연령에 상관없이 쇠고기를 수출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OIE 판정이 나오는 대로 수입위생조건 개정에 착수할 예정이다.

다만 개정작업 전 8단계의 위험평가 과정이 문제다. 2006년 1월 태어난 지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쇠고기만 수입한다'는 위생 조건에 합의할 때까지 이 과정만 1년이 걸렸다. 이 기간을 얼마나 앞당길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농림부는 최대한 늦춰 체면을 세우겠다는 입장이지만 경제 부처로선 이왕 열기로 한 것이라면 절차를 간소화하자는 주장이다. 최소한 추석 때까지는 미국산 쇠고기가 시장에 깔려야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미국산 쇠고기 수입되면=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현재 국내 수입시장의 75%를 차지하는 호주산을 대체할 전망이다. 호주산과 미국산이 가격 경쟁을 하게 되면 호주산 쇠고기 가격도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2년간 국내 수입 쇠고기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를 누려온 호주산 가격은 국제 평균 가격의 두 배에 팔리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LA갈비 등의 뼈 있는 쇠고기 소비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03년 이전까지 갈비는 국내로 들어오는 미국산 쇠고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 있는 부위였다.

박혜민 기자 <acirfa@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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