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축산물등급판정소 직원이 국내산 쇠고기의 등급 판정 작업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미국 측이 쇠고기 전면 개방을 FTA 협정 서명과 연계하겠다며 노골적인 압박을 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측 입장은 어정쩡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합리적 절차와 기간'을 거쳐 개방하겠다고 약속했다. 반면 농림부는 여전히 자체 위험 평가를 거친 뒤 개방하겠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늦어도 추석 전까지 미국산 쇠고기를 개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연말까지 미국 쇠고기 수입을 미뤘다간 대선 정국에 휘말려 정치 이슈화될 수 있다"며 "그렇다고 검역 절차를 생략할 수도 없기 때문에 가급적 절차를 서둘러 추석 전에는 미국 쇠고기가 시장에 풀리도록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밝혔다.
◆ 헷갈리는 한국 입장=박홍수 농림부 장관은 4일 국회 농해수위에 참석해 노 대통령의 언급이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결론이 나온 뒤 과학적 절차를 밟아 처리하겠다"는 기존 입장과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한.미 FTA 농업분과장을 맡았던 배종하 농림부 국제농업국장도 "쇠고기 광우병(BSE)과 관련된 검역, 수입위생조건 절차에 대해 미국에 시한을 약속한 바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OIE의 판정이 나오더라도 우리 측 검역 절차를 거쳐야 수입을 허용할 수 있다는 기존 농림부 입장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사뭇 다른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권 부총리는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그동안 많은 자료 축적이 있었고, 서로 논의가 진행됐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검역 절차를 거치되 통과의례 정도로 간소화하겠다는 얘기다.
◆ 어떤 절차 밟아야 하나=우선 쇠고기에 대해 한.미가 체결한 '수입위생조건'을 개정해야 한다. '뼈 없는 쇠고기'만 수입할 수 있게 돼 있는 현재의 수입위생조건을 개정해 갈비 등 '뼈 있는 쇠고기'까지 수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OIE 총회에서 미국이 '광우병 위험이 통제되는 국가'라는 평가를 받으면 미국은 부위나 연령에 상관없이 쇠고기를 수출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OIE 판정이 나오는 대로 수입위생조건 개정에 착수할 예정이다.
다만 개정작업 전 8단계의 위험평가 과정이 문제다. 2006년 1월 태어난 지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쇠고기만 수입한다'는 위생 조건에 합의할 때까지 이 과정만 1년이 걸렸다. 이 기간을 얼마나 앞당길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농림부는 최대한 늦춰 체면을 세우겠다는 입장이지만 경제 부처로선 이왕 열기로 한 것이라면 절차를 간소화하자는 주장이다. 최소한 추석 때까지는 미국산 쇠고기가 시장에 깔려야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미국산 쇠고기 수입되면=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현재 국내 수입시장의 75%를 차지하는 호주산을 대체할 전망이다. 호주산과 미국산이 가격 경쟁을 하게 되면 호주산 쇠고기 가격도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2년간 국내 수입 쇠고기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를 누려온 호주산 가격은 국제 평균 가격의 두 배에 팔리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LA갈비 등의 뼈 있는 쇠고기 소비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03년 이전까지 갈비는 국내로 들어오는 미국산 쇠고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 있는 부위였다.
박혜민 기자 <acirfa@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