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대 오른 최고감정기관 공신력/“국과수허위감정”발단 이창렬씨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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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구속되자 인감날조 주장/재판 진행중 느닷없이 제보/사실이면 민·형사재판 “휘청”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뇌물을 받고 허위감정을 해주고 있다는 제보에 따라 검찰이 진상조사에 나서면서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민자당 전중앙위원 이창렬씨 사건에 대해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씨 사건은 당초 사건해결을 미끼로 금품을 가로챈 단순사건으로 여겨졌으나 지문 위조사기단과 문서감정을 둘러싼 의혹등이 겹쳐지면서 각종 추측이 난무,수사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만일 국과수에서 돈을 받고 허위감정을 해주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감정기관에 대한 공신력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은 물론 문서감정을 가장 신뢰성 있는 판단의 기초로 했던 그간의 민·형사소송 모두가 불신의 대상이 될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발단=이창렬씨는 지난해 10월 공갈혐의로 구속기소된 건설업자 이모씨(45)로부터 『법원관계자에게 부탁해 석방시켜주겠다』며 1억3백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서울지검 수사과에 의해 구속됐다. 검찰은 이씨가 돈을 건네받으며 써주었다는 「현금보관증」을 근거로 이씨와 사건청탁을 알선한 한치준씨(40)를 구속기소했으나 이씨는 보관증이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위조된 것이라며 혐의사실을 부인했다.
이씨는 『한씨의 부탁으로 건축업자 이씨의 석방을 위해 힘쓴 사실은 있으나 돈을 받은 사실은 없으며 이씨의 반대파와 가깝게 지내는 점에 앙심을 품고 나를 허위고발했다』고 주장했었다.
검찰은 그러나 현금보관증을 대검 과학수사운영과에 감정의뢰한 결과 보관증에 찍힌 이씨의 도장과 한씨의 지문이 진짜라는 판정이 나오자 이씨를 구속 기소했다.
한편 지난해 11월 이씨에게 돈을 건네주었다고 진술했던 검찰측 중요참고인 조남근씨(37)가 『서울경찰청 특수기동대에 끌려가 「이씨사건과 관련된 진술이 허위였다」는 자백을 강요당하며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검찰에 진정하는 사건이 발생,사건이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경찰은 『조씨가 합성수지판을 이용한 전문 인감·지문위조단의 일원이며 이씨사건의 증거물이던 현금보관증도 위조된 것이라는 강한 심증이 있다』고 밝혔었다.
인감과 지문을 사진촬영한뒤 필름을 일본에서 수입한 특수합성수지판에 대고 강한 빛을 쬐이면 화학작용을 일으킨 수지판위에 위조할 인감과 지문이 똑같이 복사된다는 것. 이씨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냉용이었으나 경찰수사는 조씨에 대한 가혹행위부분이 드러나는 바람에 제동이 걸려 수사진척을 보지못한채 마무리됐다.
이씨측 변호인들은 문서감정이 검찰 자체기구에 의해 이루어진 점을 들어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제3의 감정기관인 국방부에 2차 문서감정을 의뢰할 것을 재판부에 요청,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국방부측이 민간인의 문서감정을 실시하지 않는다며 거절함에 따라 국과수에 감정을 재의뢰한 결과 대검의 감정과 동일한 것으로 통보됐다.
이에 따라 이씨의 혐의를 뒤집을만한 결정적인 반증이 나타나지 않은채 이씨의 재판이 4개월째 진행중이었다.
◇제보=이런 와중에서 이씨를 고발한 건설업자 이씨가 국과수 김모실장(52)과 짜고 여러차례 허위감정을 해왔으며 국과수 직원들이 뇌물을 받고 허위감정을 해주고 있다는 제보가 검찰에 접수됐다.
제보에 따르면 김실장은 89년부터 4∼5차례에 걸쳐 서울 종로의 K인쇄소에 지문과 인장 등 50여개를 갖고 찾아가 합성수지 인쇄기로 복사해갔으며 건설업자 이씨는 현재 문서감정을 둘러싼 4개의 형사사건에 관련돼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씨측은 지문과 인장이 모처에서 유출된 이 과정에서 보관증이 유출됐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이창렬씨가 받은 1억3백만원중 현금이외에도 3천만원짜리 어음이 추적확인됐으며 이씨 주변인물들의 진술등 충분한 방증자료에 미루어 돈을 받은 것이 명백하다』며 유죄를 확신하고 있다.
◇과기수측 주장=문서분석실 근무자는 실장을 포함해 모두 6명.
이들은 『이창렬씨의 보관확인서는 김실장이 감정한 것이 아니며 직원 개인이 아닌 4명이 전원합의로 감정서를 작성하고 있다』며 금품수수·허위감정주장에 펄쩍뛰고 있다.
이들은 또 이런 상황에서 더이상 감정업무에 종사할수 없다며 전원 사표를 제출키로 하는 한편 관계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남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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