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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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975년 초. 미국의 유명한 다국적 식품회사인 유나이티드 브랜즈사의 엘리 M 블랙회장이 뉴욕 맨해턴 파크 애비뉴의 44층 사무실에서 유리창을 깨고 뛰어내려 투신자살했다.
전직이 유대교 목사였던 블랙회장의 자살은 아무런 유서도 없고 그 동기도 전혀 알 수 없는 의문의 사건이었다. 그의 자살동기가 미궁에 빠지자 뉴욕증권거래위원회가 회사의 문제점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결과 엄청난 뇌물스캔들이 폭로됐다. 블랙회장은 자살하기 몇달전 하비 존슨 부회장을 마이애미로 보내 온두라스 재무장관에게 약속한 뇌물 2백50만달러중 그 절반을 건네주었음이 회사장부 감사에서 확인됐다.
의문의 블랙회장 자살동기는 무리한 팽창경영에 따른 회사재정난 정도로 추정됐고 회사는 엉뚱하게도 국제적인 뇌물스캔들에 휘말려 커다란 오명을 남겼다.
자살로는 일본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하라기리」(복절)라는 일본의 자살형태는 웹스터 영어사전에까지 올라 있다. 195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일본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3명으로 세계 1,2위를 다퉜다.
자살의 동기는 각 민족의 문화전통과 나라에 따라 다르다. 미국은 절망에 몸부림치는 「자기파괴형」이고 일본은 의도적인 「명예지향형」이다.
우리나라도 인구 10만명당 18명(80∼82년)의 자살률을 보여 미국(12.5명)·일본(17.6명)보다 높고 세계6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자살형태는 살신성인형·열녀형·원혼형·순사형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자살들은 곧 유교적인 실행윤리로 받아들여지면서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자살은 일종의 사회병리학적 현상이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도 『목민심서』에서 순결을 지키기 위한 이외의 자살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신에게 사람의 생명을 바치는 고대의 인신공의에 자살의 기원을 두기도 한다. 그러나 기독교 윤리는 자살을 죄악시해 절대 금기로 삼는다.
입시문제 도난사건 수사중 서울신학대 경비과장이 자살을 해 또한번 떠들썩하다. 교회 집사라는 직분을 가진 그의 자살이 어떤 동기였는지 온국민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양심이냐,공범이냐로 엇갈리고 있는 그의 자살 동기를 끝내 신만이 알고 말것인지….<이은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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