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북한 경제에도 이로운 일이 될 것입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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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미 자유무역협정(KUFTA)은 북측 경제 건설에도 이로운 일이 될 것입네다."

지난달 30일 저녁 평양 시내의'민족식당'. 남북 경협 창구인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의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 섬유업체를 경영하는 이모(49) 사장에게 이렇게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섬유 같은 경공업 분야에서 관세가 사라지면 개성공단 사업도 탄력이 붙어 결국 북측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며 KUFTA 체결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에 이 사장은 "KUFTA 체결 후 남측 기술력과 북측 노동력이 합쳐지면 폭발력이 대단할 것"이라며 건배를 제안했다.

2.13 합의 이후 한 달 반이 흐른 평양은 KUFTA 협상을 주시하고 있었다. 북한 당국은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지배와 약탈의 올가미"라고 비난해 왔다. 지난달 28일 대남방송인 평양방송은 "극도의 굴종과 오만으로 얼룩진 남조선.미국 자유무역협정 체결 책동이 더욱 본격화되고 있다"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하지만 경협 실무를 맡은 북측 관계자들의 속내는 달랐다. 한 인사는 "(한.미 FTA가) 비난받을 부분도 많지만 적어도 섬유 분야에선 남측과 협력하면 우리도 얻을 게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북측 인사들은 또 한국 기업인들에게 "북측에 투자를 늘릴 계획이 있느냐" "개성공단 원산지 표기는 어떻게 되느냐"고 하는 등 질문을 쏟아냈다. KUFTA 이후 추진될 남북 경협 프로젝트에 대해 은연중 기대감을 표명한 것이다.

2.13합의 이후 해빙 무드가 이어지면서 사업 차 방북하는 남측 인사들의 발걸음도 늘고 있다.

지난달 31일 평양발, 선양(瀋陽)행 고려항공 여객기의 186개 좌석 중 130개 좌석에는 직.간접으로 대북 관련 사업을 하는 남측 인사들이 탑승했다. 2월 말부터 평양에서 건축 일을 하고 있다는 정모(42)씨는 "2.13 합의 이후 북측에서 더 적극적으로 사업을 제안해 평양을 자주 왕래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시내 곳곳엔 건물 신축과 리모델링 공사 현장이 적지 않았다. 보통강호텔 인근에선 한국의 한 건설업체가 빌딩 신축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일부 아파트의 승강기 개조 공사를 진행하는 국내 업체도 있었다. 핵실험 이후 평양 시내를 장식했던 '핵 보유국'구호는 말끔히 사라졌다. 그 대신 김일성광장, 평양 교예극장 인근 거리에는 '경제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서 혁명을 일으키자'등과 같은 구호가 등장했다. 봄을 맞이한 평양은 민생을 향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평양=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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