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증오교육」발언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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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우리 나라를 다녀간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일본총리는 방한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정신대문제가 나올 줄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앞서 「일본정부소식통」이라는 익명의 일본관리가 총리의 방한전후 계속된 반일시위와 관련, 『한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일본증오」를 교과서에서 가르치고 있다』며 「증오교육」의 중지를 촉구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동시에 가토고이치(가등굉일) 관방장관은 「미래지향적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우리의 일본 인식에 대한 일본인 지도층의 불만을 그들 특유의 방식으로 표현한 대목으로 주목된다. 평지풍파의 망언발설보다 진일보한 느낌이다. 우리 국회에서 정신대 문제에 대해『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고한 일본총리의 발언은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다. 반면 「증오교육」이란 말은 그들이 좀처럼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흔네」(속마음)라 할 수 있다.
속마음이 그렇기에 그들은 10년 전인 1982년 일본교과서 왜곡 파동당시 약속한 역사교과서수정을 이런저런 핑계로 미뤄온 것이다.
예컨대 현재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역사교과서 『신상세 일본사』를 보자. 교과서 파동이전 이 책에서는 일본이 우리의 외교권과 내정권까지 빼앗은 1905년부터 패망해 물러간 1945년까지의 한국관련기술은 통틀어 13행밖에 되지 않았다. 파동이후 10행이 수정, 추가된 것이다. 늘어난 23행은 교과서의 한목(24행)에 불과하다.
그나마 기술내용을 보면 가관이다. 내용중 반이상인 14행이 강제병합과정에 대한 것이다. 정작 식민통치에 대한 내용은 3·1운동 3행, 관동대 진재 당시의 조선인대학살 4행, 그리고 강제연행에 대한 것은 2행에 불과하다. 그나마 3·1운동에 관한 내용 3행만 본문에 쓰여져 있을 뿐 조선인학살과 강제연행내용은 깨알만한 글씨로 각주에 감추어져 잘 보이지도 않는다.
3·1운동이전의 혹독한 무단통치하에서 일어났던 토지약탈과 일제말기의 한국어말살·신사참배강요·징병 징용, 그리고 비인간적인 정신대 등의 만행이 전혀 언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없었던 일」로 덮여져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이를 일본의 「반한역사교육」이라고 규탄한다.
그러면 우리의 역사 교육은 과연 「일본에 대한 증오교육」인가. 고등학교 교과서를 예로 들어보자. 우선 양적으로 1876년 개항이후 1910년 국치까지의 일제침략관계는 「개항이후열강의 경제적 침탈」이라는 소제목하에 3면,4행으로 기술돼 있다. 이후 45년까지의 식민통치기간은 「민족의 수난」이라는 소제목으로 3면,18행에 불과하다. 역사교과서 전체 3백80면 중 단 7면으로 반일역사교육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내용을 본다면 오히려 「친일역사교육」이 아닌가 의심할 지경이다. 예컨대 20만명의 여성들이 일제의 강압에 끌려간 정신대문제가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어디에 언급돼 있는가. 중학교 교과서에서는 『여자들까지 침략전쟁의 희생물이 되었다』고 한마디로 언급됐을 뿐 구체적 만행사실은 은폐돼 있다.
한일역사교과서는 한결같이 12세 소녀를 전쟁의 희생물로 삼은 역사의 비극을 감춘 채, 이른바 「미래지향적」양국관계를 수립하고자 협력하고 있다고 생각 될 정도다. 이것이 어떻게 증오교육인가.
우리는 일본이 우리민족에게 행한 억압과 만행에 대해 그실체를 뚜렷이 밝혀 자라나는 세대에게 더 분명히 인식되도록 가르쳐야 한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분명히 알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게 하는 것에 역사교육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나치에 대해 유럽 각국이 어떻게 교육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일본의 소위 「증오교육」운운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 같은 발언이 나오게끔 만든 우리자신을 질책해야 한다. [박성수 교수<한국정문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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