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미 FTA 핵심 쟁점별 타결 전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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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결국 타결될 것이다. 결렬되었을 때 두 나라의 아쉬움이 너무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수준은 ‘중간급’일 것이다. 양국 업계의 경쟁력 여건, 협상에 임하는 입장과 그 입장을 내세우는 논리와 근거, 그리고 정치적 속사정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중간 수준’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주요 쟁점별로, 그 중간 수준의 타결안을 미리 가늠해 본다.

■ 쇠고기=쇠고기에 관해 한국이 수세다. 광우병 때문에 미국 쇠고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지만, 여기에 미국 쇠고기에 대한 거부감도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양국 모두 잘 알고 있다. 또 미국 정부가 쇠고기 때문에 얼마나 업계나 국회에 시달리는지도 잘 이해하고 있다.

쇠고기의 안전성과 관련해 5월에 국제수역기구(OIE)가 내릴 판단을 두고, 한국은 그 판정을 보고 수입을 허용할지 말지를 결정하겠다고 하고, 미국은 그 판정 결과대로 수입 재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지금 당장 서면으로 약속하라고 하는 상황이다. 양국은 5월 판정대로 수입 여부를 결정한다고 약속하고, 더불어 한국의 높은 관세를 점진적으로 인하하는 선에서 합의할 것으로 보인다.

■ 자동차=여기서는 서로 입장이 팽팽하다. 한국은 미국에 자동차 관세를 당장 철폐하라고 하고, 미국은 한국에 높은 관세를 없애고 배기량 기준으로 되어 있는 자동차 세제까지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무역장벽도 아니고 국내 세제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국제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제도이기 때문이다. 특소세나 종부세처럼 부자들이 주로 쓰는 물건에 대해 더 높은 세율을 매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나라에서나 용인되는 제도이지, 대부분 나라는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따라서 배기량 기준의 자동차 세제는 언젠가 단일 세율을 적용하는 식으로 정상화될 수밖에 없다. 미국 자동차 업계가 장기간에 걸쳐 경쟁력을 심하게 잃은 상태이고 또 한국의 자동차 관세가 너무 높으므로, 양국 공히 자동차 관세를 철폐하되 한국이 더 빨리 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섬유=섬유와 섬유수입제도가 미국의 취약점인 것은 수십 년 된 일이다. 그래서 미국에 섬유 관련 관세를 당장에 철폐하라고 요구할 만하다. 그러나 미국의 섬유산업이 너무 취약해져 우리로 치면 ‘쌀’ 정도로 민감한 부문이라는 점을 양국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미국이 까다로운 원산지 규정, 높은 관세, 특별한 세이프가드(수입급증을 막는 조치) 등을 고집하는 것이다.

따라서 섬유에 관해, 우리에게 적용하는 원산지 규정을 완화하는 대신 한국을 통해 다른 나라 섬유제품이 미국으로 우회수출되지 못하도록 하는 예방조치를 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한국 섬유제품의 급격한 수입은 관세할당(할당 수준까지는 낮은 관세로 수입을 허용하되 그 이상의 수입에 대해서는 높은 관세를 적용하는 것) 등으로 억제토록 하면서 미국의 섬유 관세를 점진적으로 인하하는 합의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 무역구제와 투자자-국가제소 등=미국의 무역구제 제도는 한국과의 FTA 협상 이전부터 많은 나라가 문제점, 특히 그 자의적 적용에 대해 비판과 지적을 많이 해왔음에도 미국이 고집해온 사항이다. 한국이 제도를 바꾸라고 한들 미국이 꿈쩍하지 않을 제도일 뿐 아니라‘무역구제 조치를 취할 때 한국에 대해 좀 완화해서 적용하라’고 한들 ‘모든 나라에 똑같이 적용해야 하는 국내 제도’라고 미국이 우기면 추궁하기 힘든 사안이다. 따라서 ‘앞으로 제도를 개선해보겠다’는 정도 이상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투자자-국가 제소(ISD)에 대해 한국은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정책(또는 그 변화) 때문에 손해를 봤다며 외국 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제소할 수 있게 하면, 국가 정책이 외국 기업에 의해 휘둘리게 된다는 것이다. 투자 관련 WTO 규정에 이미 그 원칙이 반영되어 있는 이 제도는, 정책을 너무 자의적으로 바꾸거나 국유화하지 못하게 하자는 게 그 취지다.
많은 국내외 기업이 ‘언제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정부’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는 나라일수록 더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정부가 정책을 마음대로 추진할 수 없는 상황(예를 들어, 수십 번 부동산 규제를 강화한다거나, 철마다 기업규제를 줄였다 늘렸다 하지 못하는 상황)을 내심 걱정하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애지중지하는 부동산 및 일부 조세를 제외한 나머지 제도 변화에 대해서만 이 제도를 적용하는 식으로 합의할 것으로 보인다.

■ 시장접근=농산물 시장개방에서 쌀을 제외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고 본다. 돼지고기나 오렌지 등 민감 농산물은 관세를 장기에 걸쳐 인하할 것이고, 나머지 덜 민감한 품목은 관세철폐 기간을 짧게 할 것이다.

서비스 시장도 교육ㆍ의료 등 집단적 의사표시가 강한 부문은 제외하고 법률ㆍ회계 등 서비스는 단계적으로 개방하도록 합의할 것이다. 한국 정부가 금융 부문에 세이프가드(경제위기 등에 금융거래를 통제하는 조치)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어, 금융 세이프가드를 두되 대신 한국의 금융 개방 폭을 더 넓히는 방향으로 합의될 가능성이 높다. 공산품을 비롯해 일반상품 등은 이미 합의한 85% 이상 품목에 대해 관세를 철폐하는 높은 수준의 개방이 기대된다.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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