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사랑·희망·겸손 … 뒤집어 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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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마녀의 한 다스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마음산책, 280쪽, 1만1500원

1990년 여름 모스크바에 갔던 지은이는 러시아인 마법사를 만나 '악마와 마녀에 관한 사전'이라는 소책자를 받는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일종의 '고정관념 뒤집어보기'. 예컨대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들을 우스꽝스럽게 재해석하는데, 촌철살인이다. 우선 '사랑'. "상대로부터 공짜로 이익을 얻기 위해 상대가 대가 이상의 것을 받았다고 착각하게 하여 덕 봤다고 생각하게 하는 주문의 일종.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 등 일부러 토를 다는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본래는 대가가 있는 거라고 여겨지고 있다." 다음은 '희망'. "절망을 맛보기 위한 필수품." '겸손'은 어떤가. "자만하고 싶은 것을 남이 대신 말하게 하는 방법"이란다.

러시아어와 일본어 동시통역사인 지은이는 지구촌 곳곳 통역의 현장에서 엿본 수많은 '상식의 전복'을 가벼운 문화인류학적 터치로 풀어낸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듯 한 문화권에서 당연한 '상식'이 다른 문화권에선 '비상식'이 된다는 것. 예컨대 연필이 한 다스면 12자루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영어의 'dozen'도 12를 뜻한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악마의 한 다스'라고 하면 불길한 숫자인 13을 가리킨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13은 불운한 숫자로 여겨지나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좋은 숫자. 일본에서는 음력 3월 13일에 13세 소년.소녀가 보살님을 참배하는 '13참배'라는 행사가 있을 정도란다.

지은이는 '문화상대주의'를 머리로만 알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낄 일이라고 말한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다. '자문화 중심주의'에 사로잡힌 이들, 아직도 '천동설'을 신봉하는 이들에 던지는 일침은 따끔하다. "좁은 시야, 오만한 강요, 무지하고 자만에 가득찬 독선, 다른 문화나 역사적 배경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결여된 상상력, 이런 것들이 얼마나 골치 아픈 것인지. 게다가 이런 정신의 소유자가 강대한 무기를 갖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비극이다."

지은이의 모국 일본이 과거 이런 '독선'을 저질렀던 바로 그 나라라는 점을 생각하면 역설적이기까지 하다. 하반신에 관한 어휘를 둘러싼 세계 각국의 음운 일치 등 도저히 웃지 않고는 읽을 수 없는 대목이 여럿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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