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로 나타난 엄마(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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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서울 H국교6년 이모군(12)은 16일 오전 9시30분쯤 서울 화곡동 집에서 아버지 이모씨(49·사채업)와 TV를 보다 스타킹으로 복면한 2인조 강도가 들이닥치는 순간 반쯤 얼이 나갔다.
아버지는 강도가 휘두른 칼에 피투성이가 됐고 아버지가 입원한 병실에서 고통스럽게 밤을 새우고 집으로 돌아온 이군은 도저히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소식에 넋을 잃었다.
악몽의 그날밤 「악마」의 모습으로 나타났던 2인조 강도중 한사람이 꿈에도 잊지 못하던 어머니 한정자씨(40)였기 때문이었다.
1년반전에 가출한뒤 한달에 두번정도 학교주변으로 찾아와 빵과 과자 등을 사주곤 했고 닷새전만해도 만나 『착한 사람이 돼라』고 말하던 어머니였다.
87년 10월 집근처 한 댄스교습소에 드나들다 어느날 편지한장 남기지 않고 자신과 두 누나를 버리고 홀연히 사라져버린 어머니.
1년반만에 돌아와 남편에게 용서를 빌고 이군형제에게 기쁨을 주었던 한씨는 그러나 끝내 춤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하루가 멀다 않고 외박을 일삼다 90년 10월 또다시 이군을 버리고 가출했다.
그러고는 16일 20세의 젊은 애인과 복면을 하고 다시 집을 찾아 남편과 어린아들의 목에 칼을 들이댄 것이다.
『생활능력도 별로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남편에게서 돈을 빼앗아 애들에게 예쁜 옷과 신발을 사주려 했을 뿐이에요.』
말과는 달리 남편에게서 턴 돈으로 먼저 자신의 온몸을 화려하게 치장한 듯한 한씨의 어처구니 없는 변명. 12세소년의 마음의 상처를 무엇으로 아물게할 수 있을지 답답하고 안타까웠다.<신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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