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록·혈록(주권의식 확립위한 캠페인 선거혁명 이루자: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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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문중·동문 대결이 과열·혼탁 부채질/사소한 정에 이끌리지 말아야
13대 4·26총선 당시의 충남 서천.
한산 이씨 문중의 이긍규 후보(민정)와 풍양 조씨 문중의 조중연 후보(공화)가 치열하게 맞붙었다.
결과는 이후보가 「JP(김종필 당시 공화당총재)강풍」을 탄 조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당시 이의원의 문중세력은 유권자 6만여명중 12%인 7천2백여명인 반면 조씨문중세력은 6%에 불과한 3천6백여명.
공화당바람에 고전을 예상했던 이의원측은 지금도 『서천은 이후보 본관인 한산 이씨의 본고장이어서 문중의 덕을 톡톡히 본게사실』이라고 감격해 한다.
이의원측은 이어 『당총재인 노태우 대통령의 교하 노씨 문중도 6백여가구나 됐기 때문에 한산 이씨와 교하 노씨의 단합도 큰 힘이 됐다』며 『이제 양 문중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처지여서 이번 14대총선에도 낙승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선거때만 되면 출마자들은 자기 문중·출신학교·종교기반까지 찾아 지지를 호소한다.
또 적지않은 유권자들이 『피붙이니까』『동문이니까』『같은 교우니까』라는 단순논리로 후보의 자질이나 능력은 도외시한채 맹목적으로 투표하는 전근대적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의 광주 광산조직책 신청자 R씨는 「조직기반자술서」에 ▲광주 K대학동창 수천명 ▲수천명의 친족 ▲외족인 K씨집안 ▲제헌국회의원을 배출한 처가 P씨문중 ▲수천명의 천주교 교우등을 장황하게 명시해놓아 그의 말대로라면 당선은 떼어놓은 당상이다.
이같은 혈연·학연찾기 경쟁은 같은 지역구내 경쟁후보와의 「혈·학연비교표」까지 만들어 배포하게 할 정도로 당락의 주요기준으로 인식되고 있다.
경기 과천­의왕에 조직책신청서를 낸 L씨(민주)는 『혈연으로 친형제 8남매·친족 1천여가구·외족 2백여가구,학연으로 K국교 7만여졸업생등 지지기반이 두터운 반면 경쟁자 K씨는 혈·학연이 전혀 없어 본인이 절대 유리하다』는 내용의 「지지기반 대비표」를 마포당사에 무더기로 뿌렸다.
이처럼 선거철만 되면 출마를 노리는 정치인들은 자기 문중을 찾고 지지를 호소한다.
심한 경우는 지역구내 「씨족싸움」으로까지 번지기도 한다.
문중은 문중대로 자기 혈족을 당선시키기 위해 「담합」하고 외족과 처족까지 동원돼 가뜩이나 과열된 선거분위기를 더욱 부채질하기 일쑤다.
13대 총선때 의령­함안의 대성바지 조씨문중에서 숙질뻘의 두후보가 나와 결국 문중이 양분되는 바람에 모두 낙선했다. 조씨 문중은 이번에는 반드시 후보단일화를 이뤄 문중출신 국회의원을 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안동에서도 안동 권씨문중이 권정달·권중동씨를 각기 안동군·안동시에 출마토록 교통정리 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역시 13대 총선당시의 경남 나진.
이곳은 학연대립이 극심하게 표출된 지역의 하나였다.
당시 민정당은 진주의 명문 진주고와 진주농고의 극렬한 동문대결상을 방지하기 위해 진주농고출신의 안병규 후보를 진양에,진주고출신의 하순봉 후보를 진주에 각각 교통정리해 출마시켰으나 하후보는 검정고시출신의 조만순 후보(당시 민주)에게 고배를 마셨다.
하후보는 진주고 동문들의 절대적 지원을 받고도 낙선했다.
이때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대다수가 서울로 빠져나가 수적으로 열세인 진주고출신들이 하후보옹립으로 단결하는 바람에 타학교출신 유권자들을 자극시켰다』면서 『이들 타학교출신의 유권자들은 진주고를 「귀족학교」로 질시해온 터여서 반발심리로 대거 연합,하후보낙선에 열을 올렸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도 혈·학연의 대결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은 조짐은 출마희망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지지기반으로 혈·학연은 물론 종교등 각종 조직까지 들먹이고 있는데서 잘 나타나고 있다.
자기당의 정책이나 노선을 떠들어 봤자 잘 통하지 않게 돼있다는 주장이다.
경남출신으로 지역구를 서울에 둔 한 출마준비자는 『서울에 비해 시골에서 혈·학연싸움이 극심하다』며 『어쩔 수 없는 현실이나 선거근대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버려야 할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공명선거실천협의회측도 『출마희망자들이 동창회다,친족회다하는 모임을 갖는 것도 일종의 사전선거운동』이라며 『이제 후보들이 같은 혈족·동문·교우라고 해 무조건 표를 호소하는 행태도 끝내야하지만 무엇보다 유권자들이 연고감정에 앞서 인물위주로 표를 찍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정선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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