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종이 만들기 김인수씨|"한 직장서 열성 30년 1인자 됐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영남 최대 제지 업체인 무림제지의 「터줏대감」 김인수씨( 54·대구시 침산2동 15의68)는 더 좋은 종이 만들기에 30년을 고스란히 바쳐온 사람이다.
경상북도 의성군 산골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25세에 친구의 소개로 종이 만드는 일에 발을 디뎠다 롤러 밑에서 반들반들해져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매끈한 종이에 매료돼 외곬인생을 걸어왔다.「배운 것도 없는 데다 적성에 딱 들어맞아」30년을 후딱 후회 없이 보냈다는 그는 이제 종이 만들기에 있어서는 누구의 추종도 불허하는 1인자가 됐다.
종이 공장의 바닥을 쓰는 청소 일부터 시작한 그는 종이를 감싸는 펠트에서 종이가 잘못 떨어져 내리지 않는가, 또는 불량품이 없는가 조사하는 일에 3년여 초년병의 생활을 보냈고 그 이후 롤러의 압력으로 종이에 광을 내는 광택일, 직접 종이를 뜨는 초지(초지)일을 맡아했고 지금은 초지과 3개 반원 19명을 지휘하는 주임이다.
세월이 흘러도 말단인양 항상 기름때가 묻은 낡은 작업복에서 벗어날 수 없는 기능공의 빈한한 생활이었지만 오늘의 그를 있게 한 것은 일을 생명처럼 아낀 그의 숭고한 장인 정신 때문이다. 『무림은 나의 생명, 나는 무림의 생명』이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그는 초년 시절 남들처럼 상사의 지시대로 일이 잘 되지 않아 좌절하고 밤새 고민했던 경험도 갖고있다.
그러나「나의 발전이 곧 회사의 발전이고, 곧 더 큰 나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신념으로 끊임없이 묻고 배우는데 온 정성을 쏟았다.
남들이 더 좋은 조건을 찾아 새 일터로 떠나가도 30년 동안 결근 한번 하지 않은 채 일에 매달려 「바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어떤 종류나 두께의 종이를 봐도 금방 무슨 재질의 재료가 몇g정도 들어갔는지, 어떤 과정에 조금의 이상이 있었는지를 금방 알아낼 수 있게 된 그의 관심은 주어진 여건을 뛰어넘어 어떻게 공정을 개선해 회사는 물론 제지업계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까에 모아졌다.
기계의 기능과 구조를 자신의 손금 들여다보듯 훤히 터득한 그는 그동안 종이를 뜨는 초지2호기의 열교환기 및 팬의 용량을 증대할 것을 건의하고, 역시 이 기계 댄디롤의 직경 확대교체 등 아이디어를 내 생산성을 8%확대시켰으며 얼룩이지지 않고 반듯한 종이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또 회사내 연구부에 적극 의사를 개진, 당시 산성지 였던 것에 탄산칼슘 원료를 첨가, 백상지를 만드는 공장으로는 처음으로 오래 놓아두어도 색상이 변하지 않고 강도가 그대로인 중성지를 생산토록 하는데 기여했다. 이외에도 공정상 종이에 구멍을 내지 않고 종이를 깨끗하게 말리는 방법 등도 고안해냈다. 『아무리 하찮다고 생각하는 일도 본인이 중심을 바로 잡고 한길로 정진하면 자연 인생살이에 즐거움도, 맛도, 먹고 살 방법도 함께 생기더라』는 그는 철새처럼 떠돌며 당장의 이익만을 챙기기에 급급한 요즘 젊은이들이 헛 약은 것이라고 질타했다.
정년을 두해 남겨놓은 지난해 말 한국 최고의 명장으로 선정되는 「생애 최고의 감격」을 맛보았던 그는 『가능하다면 그동안 갈고 닦은 기술이 후배 양성에 쓰이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고혜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