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딸기박사」 정문홍씨(앞서 뛰는 사람들: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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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신풍종 수출로 「UR태풍」대응/24년간 농업기술개발 외길/매년 겨울 특강열어 새해 농사준비
충남 논산 농촌지도소 원예계장 정홍문씨(55)의 별명은 「딸기박사」다.
전국에서 성가가 높은 오늘의 「논산 딸기」를 만들어낸 숨은 일꾼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재배기술과 가공 이용기술 개발을 통해 딸기를 수출농산물로 육성할 작정입니다. 농촌이 망한다고 앉아서 걱정만 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이제 농산물 생산도 기술개발에 성패가 달렸어요.』
그는 요즘 논산군 부적면 마구평리 일대 1만여평에 국내 최초의 딸기 전문연구소 착공준비에 바쁘다.
93년 완공될 예정인 연구소는 「논산 딸기」를 국내의 명품에서 세계의 명품으로 키워내는 산실이 될 것으로 그는 굳게 믿고있다.
오늘의 논산딸기가 전국 제일의 상품으로 대접받기까지 지난 20년간 정계장의 피나는 노력을 인근 농민들은 다안다.
66년 논산군 채운면에서 노지재배로 시작된 논산 딸기는 70년대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무가온 반촉성 재배,80년대 수막 열풍기 등을 이용한 가온촉성재배,90년대에 들어서는 묘냉장에 의한 억제재배까지 발전하여 이제 연중 딸기를 생산하게 됐다. 그 과정 마다에서 정씨는 농민들과 함께 땀흘리며 연구하고 실험하고 새로운 기술을 보급해왔다.
그동안 대부분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반촉성 재배로 출하시기가 3∼5월에 몰려있어 홍수출하로 제값받기가 어려웠던 것을 정계장의 힘으로 90년부터 촉성재배와 억제재배 기술을 보급해 작형분산에 의한 연중생산이 가능하도록 바꾸어 놓았다.
또 고품질의 신선한 딸기생산과 상품성 향상으로 소비자 기호도를 높이기 위해 87년부터 조기배양 우량묘를 매년 2만∼3만주씩 생산,농가에 보급해 15∼20%의 증수효과를 가져오게 했다.
작년 한해 논산군에선 2천8백38 농가가 8백50㏊에 딸기를 심어 모두 1백73억원의 소득을 올렸다. 끊임없는 연구·개발의 성과다.
『한해의 농사는 겨울동안 어떻게 다음해의 농사를 준비하느냐는 마음가짐에 달려있습니다.』
정계장은 매년 겨울 농민교육과 고소득 기술강좌를 통한 반복교육으로 신기술 보급과 다양한 포장개선을 농민들과 연구한다.
『물건이 아무리 좋아도 우선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지못하면 팔리지도 않고 제값도 못받아요. 우선 먹음직스럽게 포장이 돼야지요.』
딸기재배가 농가소득을 크게 올리자 밤낮없어 정계장을 찾아오는 농민들이 늘고 전화상담을 해오는 통에 가족들로서는 불만스러운 점도 없지않지만 정작 정계장은 밤을 새우면서라도 상대방이 알아들을 때까지 설명에 열을 올린다.
정계장의 원래 꿈은 선생님이었다. 공주사대부고를 60년 3월 졸업했으나 가정형편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면서 인생의 행로가 크게 바뀌었다.
12살때 아버지를 잃은 정계장은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고향인 전북 익산군 망성면 무형리에서 어머니가 짓던 논 1천6백평과 밭 5백평의 농사를 떠맡게됐다.
65년 우연한 기회에 친척의 소개로 농사는 계속 지으면서 공주 직업소년 학교에서 강사로 3년간 근무하게 됐다.
정계장은 이때 농촌 발전을 위해서는 4H육성·농민후계자 양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68년 농촌지도소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경기도 연천에서 근무하다 71년 2월 논산군 농촌지도소로 자리를 옮겨 22년째 근무하고 있는 그는 직위나 보상보다도 일 자체에서 더 큰 보람을 찾는 자세로 지금껏 생활해왔다. 그래서 평범한 공무원이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업적을 쌓았고 쌓아가고 있다.
『땅은 거짓이 없습니다. 뿌린대로 거두지요. 사람의 생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땀흘리고 애쓴만큼 결실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논산=박상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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