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히 나서야 할 「정신대문제」/이석구 동경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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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간업자가 한 짓이다.』『전혀 간여하지 않았다.』『조사해봤지만 증거자료가 없다.』
이것이 지금까지 정신대에 관한 일본정부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일정부는 국회에서 사호당으로부터 정신대에 관해 여섯차례에 걸쳐 추궁당했으나 그때마다 『군이 관여했다는 것을 증명해 줄만한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최근 정신대 출신 김학순씨가 일정부에 보상을 청구하면서 이 문제가 크게 클로스업됐을때도 일정부는 부정일변도였다. 한국내에서 이를 비난하는 여론이 비등하자 자료를 알아보겠다고 마지못해 나섰다. 그러나 일정부는 관련자료를 찾으려고 각 성에 지시했으나 보고가 없어 고민이라는 것이 미야자와(궁택)일총리 방한을 앞둔 지금까지의 공식 입장이었다.
한편 자료를 보관하고 있던 방위청도서관 관계자의 말도 걸작이다. 자료가 있는 줄은 알았으나 정부가 조선인위안부(정신대)관련자료를 찾으라했으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방위청자료는 전체위안부 자료지 조선인에 국한된 자료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삼척동자도 웃을 일이다.
그런데 이제 바로 발밑이라 할 수 있는 방관청에서 관련자료가 발견됐으니 일정부는 종전 자세를 계속 취할 수가 없게 됐다. 일정부대변인격인 관방장관이 대한사죄불가피성을 일단 인정하고 나왔지만 구체적 사후처리에 대해 일본이 무슨 말을 할지는 계속 주목대상이다.
자기 정당화를 둘러대는데는 천부적인 자질이 있는 사람들이므로 또 해괴한 이론을 내세울지도 모르겠다.
한편 우리 정부도 큰소리 칠 입장은 못된다. 이번에 자료를 발굴,폭로한 사람은 현대사를 연구하는 일본인 대학교수다. 씻을 수 없는 민족의 치욕이라할 이 정신대문제와 관련해 과연 우리 정부는 이를 자료로 뒷받침,일본정부와 당당히 교섭에 나설 생각이 어느정도 있었는지 묻고 싶다. 미군의 협조를 얻으면 충분히 자료를 입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방치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에 비하면 일본의 일부 양식있는 인사들이 우리정부보다도 오히려 더 집요하게 추궁해왔다고도 할 수 있다.
자기를 지키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만이 남으로부터 대접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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