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국가 인정 요구 일축하고 6자회담 협상론에 힘 실어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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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3월 28일자 1면>

본지가 보도한 헤이든 국장의 발언은 28일 로이터 통신을 통해 세계로 타전됐다. 세계 최고 정보기관의 책임자인 헤이든 국장은 왜 북한의 핵실험을 실패로 못 박은 것일까.

CIA가 핵실험을 실패로 규정한 데는 정책과 기술적 판단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선 CIA가 최종 판단을 끊임없이 유보하는 정보기관의 특성을 뒤로 하고 북한 핵실험을 '실패'로 단정한 것은 6자회담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정부는 북한 핵실험이 실패로 규정됨에 따라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 힘을 실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기 전에 외교력을 동원해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폐기시켜야 한다"는 협상론이 힘을 얻게 됐다는 것이다.

미국이 BDA에 동결된 북한 자금 2500만 달러를 돌려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도 협상론자들이 미 행정부 내에서 입지를 굳건히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북한의 핵실험 실패는 미국의 협상력을 강화시켜줬다는 해석도 있다. 핵실험이 성공했을 경우 미국이 꺼내들 수 있는 카드는 극히 제한됐겠지만 실패하는 바람에 유연한 대처가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서울의 외교소식통은 "핵실험이 실패했다는 분석은 부시 행정부 내에서 북한과의 협상에 반대하는 강경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한 명분이 됐다"고 했다. 그는 또 "6자회담에서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를 일축하는 근거도 됐다"며 "북핵 실패는 미국에 다목적 카드였다"고 했다.

중국 베이징(北京)의 정보 채널 일각에서는 박봉주 북한 총리가 핵실험 실패와 관련돼 실각했다는 이야기도 나돈다. 중국의 소식통은 "박 총리는 핵실험의 재료 반입 책임을 맡았는데 아랫사람이 정상 제품을 반입하지 못해 핵실험 이후 박 총리를 비롯한 100여 명이 대대적으로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 박 총리는 핵실험 이후 공개석상에서 한동안 사라졌다. 또 CIA는 핵실험 당시 정황들을 기술적으로 분석해 '실패'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CIA는 수준에 훨씬 미달된 폭발 위력을 실패의 핵심 근거로 삼았다고 한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한 지진 규모는 리히터 지진계로 3.58(Mb.P파 이용한 파악 규모는 3.9)이었다. 핵탄두 위력으로 환산하면 0.8kt(1kt은 TNT 1000t의 폭발력)이다.

북한은 핵실험 직전 중국에 "4kt 규모의 핵실험을 할 것"이라고 통보했었다. 통보 규모의 5분의 1에 불과한 폭발 위력만을 보였을 뿐이다.

CIA는 북한이 단 한 차례만 핵탄두 실험을 한 것도 완벽한 무기급 핵탄두 개발에 실패한 근거로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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