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고 투표하자/이상우(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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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의사가 되려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나라에서 실시하는 의사자격시험에 붙어야한다. 의사자격이 없는 사람이 병을 고친다고 남의 몸에 칼을 대면 법으로 처벌한다. 선량한 사람을 돌팔이로부터 보호하기위해서다.
원하는 사람 모두에게 의술을 실시하지 못하게 한다고 해서 불평 등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노력해 자격을 따면 의사가 될 수 있도록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제구실 못하는 정당
인간의 행위기준을 정해주는 법률을 만드는 국회의원이나,실질상 국민 모두의 삶의 질을 결정해주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되는 자격을 법으로 정해놓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다. 의사에 준한다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은 일정한 전문교육을 받고 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중에서 유권자가 투표로 선출해야 마땅하다.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억지로 국회의원과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우리의 정치판도가 어지러워지고 있다.
국회의원과 대통령등의 자격을 법으로 정하지 않은 것은 후보를 선정하는 정당을 믿기 때문이다. 각정당에서 맡아 해야 할 일을 담당하기에 합당한가를 판단해 골라낸 사람을 후보로 공천해주는 것이 자리잡힌 민주주의국가에서의 관례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이렇게 제구실을 하는 정당이 없다. 후보의 지식·판단력·신념·도덕성 등을 가려 공천하는 정당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흥정으로 후보공천을 해오고 있을 뿐이다.
정당의 공천이란 그 정당 실력자의 「패거리」라는 것을 밝혀주는 것뿐이다. 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이 답답해 하는 것은 표를 찍어줄 정당도 없고,후보도 없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결국 어느 후보가 나라에 폐를 덜 끼칠까를 살펴 마지못해 표를 던지는 수 밖에 없다. 이렇게해서 뽑힌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제구실을 해 내겠는가.
크든 작든 인간집단의 질서는 힘으로 유지된다. 지배자가 규칙을 어기는자에 징벌을 줄 수 있는 강제력으로 질서를 유지할때 이를 강제질서라 한다. 구성원의 합의로 규칙을 만들어 스스로 질서를 유지해 나가게되면 자율질서라 한다. 민주주의는 자율질서가 바람직하다고 믿는 믿음이다. 강제질서는 통치자의 힘이 백성들의 저항을 압도할 때만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민주질서는 구성원들이 통치권력에 스스로 승복할 때 안정을 유지하게 되고 또한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어떤 조건에서 사람들은 통치권력에 자발적으로 승복하게 되는가. 통치자가 권위를 가질 때다. 나보다 나은 판단을 하는 사람이라고 믿게되면 사람들은 승복한다. 민주정치의 생명은 곧 정치지도자의 권위의 확립에 있다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권위 필요한 지도자
지도자의 권위는 맡은 일에 대한 지식과 친숙도,그리고 도덕적 우월성에서 생겨난다. 지도자가 나보다 모르고,일에 대한 경험도 적고 나아가 도덕적으로도 내가 경멸할 정도라고 할때 어떻게 그 사람의 지도자적 권위를 인정할 수 있겠는가.
권위가 없는자가 힘으로 억지를 써 권위를 세우려고하는 비합리적인 지배형태를 우리는 권위주의라 부른다. 이러한 권위주의가 민주주의의 적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민주화투쟁을 전개하면서 권위주의를 타도한다고 운동을 펴왔었다. 한데 권위주의 타도가 권위의 타도로 치달아 오히려 우리의 민주주의를 망쳐놓고 있다. 권위주의 타도란 곧 거짓지도자의 타도인데 민주질서유지의 핵이 되는 사회 각 영역 지도자의 권위자체를 부셔놓아 이 사회를 무질서의 도가니로 만들어 버렸다. 교수·교사·검사·경찰관·장관·국장·사장·과장·장교 등은 모두 자기직과 관련해 권위를 유지할 수 있어야 제일을 할 수 있는 자리다.
그런데 이들의 권위를 민주화란 미명아래 닥치는대로 부수는 일들을 우리는 몇년간 계속해왔다. 어떻게 이 사회에 질서가 서겠는가.
우리사회의 진정한 민주화는 사회구석구석에서 권위회복을 위한 투쟁을 벌임으로써만 이룰 수 있다. 정치의 민주화도 마찬가지다. 정치지도자의 권위회복이 이루어져야 민주정치가 제 궤도에 오르게 된다.
올해 우리는 네차례 선거를 치르게 돼있다. 선거는 국민이 정치발전에 직접 기여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다. 선거를 통해 국민들이 우리정치의 민주화 기틀을 잡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어떻게 하면 될까. 다음과 같이 제안해본다.
○민주기틀 다질 기회
첫째로 국회의원선거에서는 당을 보지말고 사람을 보고 투표하자. 국회의원자격시험을 치르는 기분으로 후보의 자격을 철저히 따져 가장 나은 사람을 뽑아주자. 나라의 법을 만들 수 있는 소양을 가졌는가,도덕적으로 흠이 없는가,병역을 기피하고 나라돈을 떼어먹고 죄를 짓고 한 사람은 아니었는가 등을 꼼꼼히 따져 투표하자. 정당은 아무런 특색도,이념적 성향도 대표하지 않고 있으므로 따질 것 없다.
둘째로 대통령선거에서는 국회의원을 많이 당선시킨 정당이 내세우는 후보를 뽑아주자. 상대적으로 나은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많이 모인 집단이라는점에서 이긴 정당의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주자는 것이다. 또한 국회의석이 많은 당에서 대통령이 나와야 나라일이 상대적으로 순조롭게 결정될 것이라는 점도 고려해 하는 말이다.
만일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이 이렇게 투표권을 행사한다면 우리나라의 정당들도 정신차려 자격갖춘 후보를 공천할 것이고 그래야 우리 민주주의도 진일보할 것이다.<서강대교수·정치학>
◎「시평」필진이 바뀝니다
새해를 맞아 중앙일보는 매주 1회(목요일)싣고있는 「시평」란의 새 필진으로 이상우 교수(서강대·정치학),이창건 위원(원자력연구원),이종대 소장(기아경제연구소),최종고 교수(서울대·법학)를 초빙했습니다.
이상우 서강대교수 정치학
이창건 원자력연구원위원
이종대 기아경제연구소소장
최종고 서울대교수 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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