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代 경영권 분쟁' 정몽진 KCC회장 단독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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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경영권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외부에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정상영(鄭相永.67) KCC(금강고려화학) 명예회장 일가가 마침내 언론에 말문을 열었다.

鄭명예회장의 장남인 정몽진(鄭夢進.43) KCC 대표이사 회장은 7일 본지 기자와 단독으로 만나 저간의 심경을 토로했다. 양쪽의 법정 공방은 때마침 8일부터 신문 광고전 등 여론 공방으로 비화할 조짐이어서 鄭회장은 사뭇 굳은 표정이었다.

그는 "(현대 대주주인) 김문희 여사 모녀는 기업 경영 경험이 없는 '무면허 운전사'"라는 격앙된 표현까지 쓰면서도 "아버지는 김여사와 언제든 만날 용의가 있다"고 대화의 여지를 남겼다. 鄭회장은 부친의 뒤를 이어 KCC를 이끌 사실상의 경영주로서 현대그룹 경영권 문제에 대한 전략 수립을 물밑에서 진두지휘해 왔다.

-일간지에 KCC 입장을 알리는 대규모 광고를 내기로 했는데.

"건축자재 회사로서 우리는 일반 국민에 대한 홍보를 잘 모른다. 김문희 여사 측 주장에 일일이 대응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저쪽(김여사 측)의 논리가 국민에게 더 먹히는 듯했다. 아버지가 조카 며느리의 회사나 넘보는 부도덕한 경영자로 오인받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진실 게임이 아니라 여론몰이가 된 느낌이다."

-여론이 KCC 쪽에 불리했다는 뜻인가.

"저쪽은 사태의 전말을 쏙 빼고 유리한 부분만 이야기해 우리에 대한 여론이 악화됐다. 가령 현정은 회장한테 남편(고 정몽헌 회장)의 재산 상속을 포기하라고 한 것은 1조원 가까운 고 鄭회장의 보증채무와 빚을 떠안은 채 기업을 안정적으로 경영할 수 없기에 그런 것이다. 그런데 그 쪽은 '포기 종용'만 언론에 부각시켰다."

-현대의 국민 기업화 논리에 대해서는.

"내가 소유하지 못하면 누구에게도 줄 수 없다는 아집의 발로다. 대북 사업을 하는 현대아산이라면 몰라도 엘리베이터 만드는 회사를 국민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발상은 난센스다."

-지난주 정상영 명예회장 명의의 '석명서'를 냈다. 내용 중에 부친과 고 정몽헌 회장 사이의 일화가 많다.

"진실을 알리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아버지는 고인을 무척 아끼고 고비마다 도움도 많이 줬다. 김여사 쪽의 주장이 얼마나 잘못됐는지를 알리기 위해 고인과의 묻어둔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KCC가 사모(私募)펀드를 통해 현대 관계사 지분을 매입한 것에 대해 말이 많다.

"(KCC가 현대엘리베이터 및 현대상선 주식을 사고 판 일지를 보여 주면서)우리가 엘리베이터와 상선 주식을 산 시점을 보면 현정은 여사가 회장에 취임한 뒤다. 저쪽 말대로 고 정몽헌 회장 유고 이전부터 적대적 인수.합병(M&A)을 기도한 게 아니다."

-현대를 꼭 鄭씨 일가가 경영해야 한다는 법이 있는가.

"아버지는 1970년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명을 받아 현대자동차 부사장으로 일하면서 회사와 그룹을 위기에서 구했다. 鄭명예회장도 아버지의 경영 능력을 높이 사 현대그룹 전체를 관장하는 일을 시키려고 한 적도 있다. 현대상선은 요즘 해운 호황을 맞아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경기가 곤두박질하면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김문희 여사 일가가 현대를 잘 경영하면 되지 않는가.

"김문희씨 모녀는 다른 건 몰라도 경영 능력은 검증되지 않았다. 현대 일부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도 문제다. 현대가 2000년부터 어려움을 겪어 왔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았다."

-鄭씨 일가가 현대를 인수하면 대북 사업이 중단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퍼주기식 대북 사업이 안 된다는 이야기지 기업에 주름살을 주지 않는 범위의 사업은 마다할 리 없다."

홍승일 기자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 일지>

▶ 2003년 8월 4일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사망

▶ 8월 8~19일 KCC 등 현대가, 현대계열사 지분 매입

▶ 10월 21일 현정은 여사, 현대 회장 취임

▶ 11월 7일 KCC, 현대 지분 추가 매입

▶ 11월 14일 KCC, '현대그룹 인수' 선언

▶ 11월 17일 현정은 회장, '현대그룹 국민기업화' 선언

▶ 11월 20일 KCC,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

▶ 11월 27일 현대,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신청

▶ 12월 2일 서울지법, 현대 측 가처분신청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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