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농」아버지와 전경 아들(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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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화염병·돌을 던지는 학생들과 부딪치는 것이 차라리 마음편해요.』
부시 대통령 도착을 몇시간 앞둔 5일 오전 10시 서울 세종로 미 대사관 앞은 5백여명의 전경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있었다.
대사관 옆 버스정류장에 배치된 서울기동대 25중대 소속 이모 상경(22)은 검문검색 이라면 몸에 배어 기계처럼 익숙했지만 이날 따라 유달리 어색하게 두리번 거리는 몸짓으로 주위를 살피곤 했다.
『농민들이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일지도 모르니 특별히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어요.』
이상경이 농민시위에 남다르게 신경을 쓰게된 것은 지난해 11월26일의 서울 장충단공원 「전국농민대회」때부터였다.
하루에도 서너차례 각종 집회와 시위에 시달렸던 이상경이지만 그날처럼 당황스럽고 힘든 하루는 없었다.
여느때처럼 진압복 차림으로 무덤덤하게 경비근무를 서던 이상경은 당시 2만명이 넘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농민들을 한사람씩 지켜보다 낯익은 동네어른들 틈에서 검고 주름 팬 얼굴의 아버지와 맞닥뜨렸기 때문.
이상경은 고향인 전북 고창에서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거들어온 농촌 출신.
휴가때마다 『이젠 더 이상 힘들어 농사 못짓겠다』는 아버지의 말을 습관적인 푸념으로 넘겨버리곤 했던 이상경에게 머리띠를 두른채 쉰목소리로 『쌀 수입개방 강요말라』고 외치는 아버지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날 먼발치에서 버스에 오르시던 아버지를 보는 것만으로 끝난걸 다행스러워 했어요. 만약 시위라도 벌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난감했습니다. 오늘도 또 만나뵙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해서….』
연초 세배도 못드렸다는 이상경은 『이제 다시는 「불행한 부자상봉」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면서도 움츠러든 어깨너머로 연신 주위를 살폈다.
이상경의 뒤로 나란히 걸린 태극기와 성조기는 이같은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히 휘날리고 있었다.<표재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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