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의 마술' 2조5천억 쓰고 44만 개 줄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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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를 만드는 능력으로만 본다면, 참여정부는 ‘마술 정부’다. 돈은 퍼붓고 일자리는 줄어든 마술이다. 지난 4년간 참여정부가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쓴 돈과 만들어진 일자리를 계산해 본 결과다.

청년실업 문제만 봐도 ‘무능의 마술’은 확연히 드러난다. 정부 통계를 종합해 보면, 지난 4년간 참여정부는 청년실업(15~29세) 대책 예산으로 2조4646억원을 썼다. 액수도 해마다 늘렸다. 출범 첫해인 2003년에 청년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3132억원을 썼다.

효과는 미미했다. 다음해 예산을 두 배 가까이 늘렸다. 2005년과 지난해에는 각각 7885억원, 7573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2006년 예산 규모는 2003년과 비교해 140%나 늘어난 액수다. 2조4000억원이면 단순하게 계산해도 연봉 2000만원짜리 일자리 12만 개를 만들 수 있는 돈이다. 또 한 달에 50만원 하는 직업훈련을 40만 명이 1년간 받을 수 있는 돈이다.

결과는 어떨까. 지난 4년간 청년 일자리는 44만 개가 줄었다(표 참조). 기어이 지난달 청년 취업자 수는 21년 만에 최저 수준(339만2000명)으로 떨어졌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 정책 그대로 8000억 더 투입

이는 ‘책상 머리 정책’이 낳은 비극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도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한 정책을 집행한 공무원 중 누구 하나 책임졌다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정부는 그동안 ‘되지도 않을 정책’을 고수했다. 관련 공무원이라면 지겹도록 지적받았을 ‘근시안적이고, 단기적이며, 질 나쁜 일자리만 만드는 정책’을 4년 내내 폈다.

정부의 청년실업 대책사업 내용은 크게 일곱 가지로 구성돼 있다. 그중 하나가 ‘직장 체험’이다. 2004년에 1500억원을 들여 8만여 명의 청년이 참여했다. 지난해는 6만5000여 명이다. 하지만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직장체험 한다고 가봤더니, 복사나 파쇄만 시키더라” “전화 교환, 잔심부름만 하다 끝났다”는 불만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없는 이 프로그램에 3년간 쓴 돈이 3300억원이다.

또 월평균 40만원에, 그마저 1년도 채우지 못하는 ‘단기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만 3년간 5000억원이 들어갔다. 결국 정부는 일시적인 고용 창출 숫자를 위해 전체 예산의 3분의 1을 낭비했다.

성적이 이런데, 정부는 올해 또 8478억원을 쏟아부을 방침이다. 하지만 11개 부처가 참여하는 이 대책의 프로그램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지난 3~4년간의 ‘정책 실패’를 정부만 인정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심지어 2005년 5월 감사원은 “정부가 청년실업 종합대책을 시행하면서 수천억원대의 예산을 방만하게 사용했다”고도 지적했다. 당시 감사 결과에 따르면 정부는 청년실업과 상관없는 엉뚱한 곳에 예산을 지원하고, 종합적인 인력수급 전망없이 부처별로 제각각 사업을 추진해 업무 혼선, 중복 사업의 문제를 드러냈다.

사회적 일자리 살펴보니

● 전체 일자리 중 67.7%는 자격증 필요
● 전공자, 유경험자 제외하면 취업 취약자 일자리 5만여 개 불과
● 가사간병 도우미 취업하려면 120시간 기본교육 수료해야
● 대부분 6개월~1년 미만 단기 일자리
● 급여 100만원 준다는 일자리 실제 채용공고에서 60만원 책정
● 관련 포털사이트 통한 구인수 1000명도 안 돼

1년 미만 일자리가 대부분

일자리 창출 정책의 문제는 청년실업에만 그치지 않는다. 일자리 사업 전반의 문제다. 그렇다고 정부가 이 분야에 신경쓰지 않은 것도 아니다. 200만 일자리 창출은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도 취임 일성에서 “일자리 창출을 정책 1순위”라고 했다.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고, 정책 1순위라는 일자리 만들기는 실패했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오래 일할 수 없는 일자리’에 정부가 지나치게 집중했다는 것이다. 취업률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 생긴 결과다. 2005년 46만1763명에게 일자리가 지원됐다.

그런데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에 따르면 이 중 1년 이상 일한 비율은 100명 중 19명에 불과했고, 공공부문을 빼면 실제 1년 이상 일자리는 7%에 불과했다. 지난해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책정한 52만6000여 명의 일자리 지원 중 교육훈련이나 인턴 프로그램 등 간접고용을 제외한 직접고용 일자리는 22만8000여 명. 이 중 1년 이상 일자리는 18%에 불과했다.

사정이 이런데 정부는 올해도 유사한 일자리 창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달 22일 정부는 2조원을 풀어 ‘사회 서비스 일자리’ 20만여 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사회 서비스 일자리는 ‘가사·간병·보육, 장애인·노인 지원 등 복지증진에 필요한 일자리를 말한다. 단기적 일자리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는 바로 그런 일자리다.

하지만 이 계획 역시 제대로 집행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의 목소리가 높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재정 2조2000억원으로 여성 일자리 13만 개, 청·장년층 일자리 6만5000개, 노년층·장애인 일자리 5000개 등 총 20만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이중 11만 개는 지난해 만들어진 사회적 일자리를 유지하는 숫자다. 따라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사회적 일자리는 9만여 개다. 이 역시 수개월 내에 임무가 끝나는 일자리가 많아 연간으로 계산했을 때 약 5만 명 정도의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부실한 사회적 일자리 정책

하지만 이코노미스트가 기획예산처 사회서비스향상기획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 고용의 질은 나쁘고, 고용 제한이 많으며, 단기 일자리에 치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사회서비스향상기획단이 관련 포털사이트(www. service. go. kr)에 밝힌 채용 인원은 17만647개로 조사됐다. 사회복지 관련이 8만4987명으로 가장 많고, 도우미 관련 직은 4만649명을 채용한다고 돼 있다. 이 중 11만5513개의 자리는 관련 자격증이 있어야만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또 관련 직종 경험자나 관련 학과 전공자를 채용 조건으로 한 것을 포함하면, 정작 취업 취약자가 지원할 수 있는 자리는 돌봄 도우미 4만649개를 포함해 5만1314개에 불과했다.

더욱이 돌봄 도우미의 경우 특별한 자격은 요구하지 않았지만, 가사간병 도우미의 경우 120시간의 교육 수료 후 취업이 가능하고, 노인(독거 노인 포함) 도우미는 80시간의 기본교육을 받아야 한다. 120시간이면 하루 6시간씩 4주가 소요된다. 당장 일자리가 급한 이들에게는 요원한 일이다.

고용의 질도 좋지 않다. 대부분 채용 기간은 1년 미만이다. 월 100만원을 지급한다며 2740명을 뽑을 예정인 아동복지교사(자격증 필요)는 채용 예정기간이 6개월이다. 역시 자격증이 필요한 데이터베이스 관리자(248명 채용)는 월 98만원을 받고 6개월 동안 일할 수 있다.

월급여는 자격증이 필수인 보건·의료 분야가 월 최대 150만원이다. 사회복지 분야 역시 96만~180만원이다. 이 밖에 시간당 5000원인 아이 돌보미, 월 60만원인 독거 노인 도우미 등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일자리와는 거리가 먼 것이 대부분이다. 3만6674명이나 뽑겠다는 민간시설 보육교사의 월급여는 96만원이다. 물론 한시직이다.

사회서비스향상기획단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올라온 채용 내용도 부실하거나 정부가 정한 방침과 근무조건이나 급여가 다른 곳이 허다했다. 가령 노인 돌보미의 경우 정부가 정한 방침은 가정봉사원 교육기관에서 80시간 이상 교육을 수료한 자격을 갖춰야 하고, 급여는 월 100만원으로 돼 있다.

하지만 한 기초단체는 노인 돌보미 채용공고를 내면서 이 같은 자격요건을 밝히지도 않고, 급여도 60만원으로 책정했다. 전국에서 1만1333명을 뽑는 영림 및 산물 수집원은 정부가 급여를 112만원이라고 정했는데도, 한 지자체는 100만원으로 공고를 냈다.

그나마 정부가 이번 사회적 일자리 정책을 발표한 이후 이 홈페이지에 올라온 채용 인원 수는 3월 22일 현재 1000명이 안 된다. 정부가 또다시 일자리 정책 실패의 길로 가고 있다.

김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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