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방곡곡 은빛 추억 물들 그날 … 또 만세 불러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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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돌이켜 보면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는 마치 하나의 군사작전처럼 이루어졌다. 국민 대다수는 우리나라가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고 있는 가운데 독일 바덴바덴에서의 낭보가 전격적으로 날아들었다. 그 과정에서의 온갖 에피소드들은 이른바 산업화 시대를 상징적으로 담아낸 하나의 모자이크화라고 해도 좋다. 그 시대의 방식대로 결정하고 유치하고 개최해 냈다. 논란도 없지 않았지만 실제로 눈앞에 펼쳐진 88올림픽은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기에 조금도 손색없는 잔치마당이었다. 그 기억은 우리에게 청.백.적.흑.황의 오방색으로 남아 있다.

2002년 월드컵은 정몽준이라는 한 개인의 꿈에서 시작됐다. 그가 권력자가 아니라 한 국회의원이요, 대한축구협회장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시대의 변화를 말해 준다. 반신반의하는 정도가 아니라 터무니없다고 코웃음 치는 사람들을 설득해 가면서 끝내 꿈을 이뤄 내는 방식은 바로 민주화 시대의 스타일이었다. 아직도 가슴 떨리는 2002월드컵의 감동은 두고두고 우리에게 선명한 빨간색으로 기억될 것이다.

2014 평창 겨울올림픽은 어떠한가. 김진선 강원도 지사와 한승수 위원장의 투 톱이 이끄는 유치위원회는 그동안 축적된 실력과 인맥을 총동원해 유치전에 나서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는가 하면 이건희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또한 팔을 걷어붙였다. 박용성 IOC 위원도 자격정지가 풀리기만 하면 전력투구할 것이 틀림없다. 정몽준 회장의 측면 지원에도 기대하는 바 크다. 평창.강릉 지역 주민들은 뜨거운 열기로 IOC 실사단을 놀라게 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따로 없고 유치위와 주민들 사이에도 아무런 불협화음이 없다. 이미 한 번 실패했던 전력마저 핸디캡이 아니라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렇듯 자발적인 총력전이야말로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에 이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아닐까?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스포츠 행사는 그 시대의 정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2014년 겨울올림픽 유치 운동은 그런 의미에서 여름올림픽이나 월드컵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면서 우리 사회의 변화를 상징하고 있다. 그렇기에 반드시 성공해야 하며 또 성공하리라 믿는다. 그러면 우리는 미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일본에 이어 3대 스포츠 제전을 모두 개최한 여섯 번째 나라가 된다. 스포츠계의 G6라고 해도 좋다.

이런 외형만이 아니라 내실에서도 겨울 종목의 엄청난 질적 변화가 예상된다. 구체적인 수치를 들지 않아도 돌아보면 알 일이다. 서울올림픽 이후 우리의 엘리트 스포츠와 사회체육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의 위상과 환경에 얼마나 큰 변화가 있었는가. 겨울올림픽 개최의 과실을 실제로 따먹을 사람들은 바로 겨울스포츠를 즐기는 평범한 시민들이다.

무엇보다 오방색의 화려한 기억으로 남은 서울올림픽, 빨간색의 강렬한 감동으로 남은 월드컵 축구에 이어 평창 겨울올림픽이 눈부신 은빛 추억으로 남는다면 우리 모두는 함께 행복해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100일간 관계자들 모두 노력을 배가하고 시민들의 관심과 격려 또한 그러하기를 진심으로 빈다. 그날, 오랜만에 함께 만세 한번 불러 보자.

고원정 소설가.평창올림픽유치위 명예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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