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김두우가 본 정치 세상] 누가 '배신자'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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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에 '배신자'논쟁이 뜨겁다. 두 당만 그러는 게 아니다. 학자들과 네티즌들도 편을 갈라 논리와 욕설을 총동원해 맞서고 있다. 이 문제가 두 당의 존립 근거에 직결된 문제일 뿐더러, 내년 총선에서의 핵심 이슈 중 하나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최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조순형 대표는 "열린우리당은 국민이 만들어준 집권당을 1년도 안 돼 분당시킨 배신자 정당"이라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배신이란 말만큼 유권자들에게 명쾌하고 단순한 메시지가 어디 있겠는가"라며 '배신론'으로 열린우리당을 압박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전대에서 2위를 차지한 추미애 의원도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의 가슴에 분열과 배신의 대못을 박았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노무현 대통령은 "趙.秋의원은 지난해 대선 직전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공약을 내게 종용한 분들"이라며 "섭섭하다"고 토로했다. 열린우리당 김원기 공동의장은 "趙.秋의원은 대선 직후인 지난해 12월 22일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를 요구한 22명의 의원 중에 포함돼 있었다"며 "그런 분들이 우리당 창당을 비난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비판했다. 과연 누가 배신자인가.

네티즌들이 사용하는 '잔민당(잔류민주당)' '노빠당(노무현 오빠당)'이라는 용어에는 적대감이 묻어 있다. 두 당 주류세력 사이에는 이보다 더 깊은 감정의 골이 파여있다. 지난해 '노무현 흔들기'에 앞장섰던 민주당 의원들은 대선 후에도 盧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계속했다. 盧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민주당 전당대회에 화환이나 축하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에선 "배신은 '반노(반 노무현)' '비노(비 노무현)' '후보단일화 추진협의회'에 있었다"고 지적한다. 배신의 원조는 민주당에 남은 사람들이라는 주장이다. "그들은 사상 최초로 국민경선을 통해 선출한 자기 당 후보를 낙마시키고, 당 밖의 정몽준 의원을 후보로 끌어들이려 했던 배신자들"이라고 말한다. 盧대통령으로선 그렇게 자신을 흔들어대던 인사들과 같은 당에 소속돼 있다는 것조차 감내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호남민심을 자극해 자신들의 당선과 정치적 입지 확보에 혈안이 된 민주당 구주류야말로 개혁세력을 지지하는 호남민심에 대한 배신자"라는 논리도 등장했다.

그러나 박상천 전 대표 등 민주당 구주류는 "호남에서 나온 95%란 절대적 지지는 盧후보가 민주당 소속이었기에 가능했다"며 "그런데도 盧대통령 측은 대선이 끝난 뒤 '민주당의 승리가 아니다'고 말하면서 호남인과 민주당에 등돌렸다"고 반박한다. "한나라당 노무현 후보였어도 호남에서 그런 지지가 나왔겠느냐"는 것이다. 또 강준만 교수는 "노무현 흔들기를 했더라도 열린우리당에 들어가면 개혁세력이 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개혁세력을 분열시킨 것은 배신 아니냐"고 묻는다.

양측 주장을 요약하면 "대선 전엔 반노.비노세력이 盧후보를 배신했고, 대선 후엔 盧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민주당을 배신했다"는 것쯤 될 것이다. 이런 배신자 논쟁은 국민들로선 가소로운 일이다. 盧후보를 배신했다느니, 민주당을 배신했다느니 하는 것은 '당신네들의 얘기'일 뿐이다. 누가 진정으로 국민과 국가를 위하는 정치를 할지 경쟁하지는 않고, 잿밥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형국이다. 국민을 안중에 두지 않고 배신자 논쟁이나 계속한다면 두 당 모두 '국민에 대한 배신자'가 되지 않을까.

김두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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