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 광장|야근 근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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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생활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25년이 다 돼가지만 병원구내 숙소에서 1년 3백65일 당직근무를 계속하던 인턴생활의 고달픔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중한 입원환자가 많지 않은 진료과에 근무하는 한달 동안은 편안한 잠자리를 자주 즐길 수도 있었으나 대개의 경우 한밤중에도 몇 번씩 불러나갈 각오를 해야 하는 생활이었다.
통행금지가 시행되던 때여서 한밤중에 인턴숙소를 나와 정원을 가로질러 병동으로 갈 때면 사방이 조용한데 길 건너 창경원 동물원에서 울어대는 늑대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리곤 해서 이 밤중에 움직이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듯한 느낌을 갖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일단 병동에 들어가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진다. 조용한 병실복도를 조심스럽게 재빠르게 오가는 낯익은 얼굴들이 반겨주기 때문에 한밤중의 외로움은 순식간에 없어지고 만다. 그리고 밤중에도 계속 근무하는 간호사·기사·간호 조무사, 그리고 수많은 직종의 병원직원들이 있기 때문에 잠깐씩이라도 눈을 붙일 수 있다는 고마움과 든든함을 느끼게 된다.
환자의 병세는 예고없이 순간적으로 악화될 수 있으며 또 새로운 중환자가 언제 응급실을 찾을는지 모른다. 따라서 병원은 당연히 하루 시간 계속 가동돼야한다. 당연한 것을 해나가는 것이 병원의 당연한 책임이기는 하나 그를 위해 수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번쯤은 생각해줄 필요가 있다. 특히 간호사·간호조무사 등 소위 3교대 근무자의 노고는 각별한 바가 있다.
1주일간 긴장 속에 밤 근무하고 그 다음 주에는 낮근무하며 또 그 다음 주에는 저녁근무로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생활 리듬에 부담이 많아진다. 가족들과 크리스마스 이브를 함께 보내거나 제야의 종소리를 함께 들을 수 없는 많은 교대 근무자들이 있기 때문에 한밤중에도 병원이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불친절하다는 등 지적 받아야 할 점도 있겠으나 대다수 교대 근무자들은 사명감으로 생활의 리듬을 유지해 나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병원뿐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는 각계각층에서 한밤중에도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원활하게 움직여 나갈 것이다.
연말·새해를 맞아 불우한 이웃을 돕는 한편 한밤중에 우리를 지켜주는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속으로라도 이해와 감사를 보내는 기회를 한번씩 갖는다면 그분들의 피로감이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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