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그들이 한국 사진의 첫 물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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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올해는 한국사진의 첫세대 세 사람이 나란히 탄생 1백주년을 맞는 해. 2년 전 타계한 사진계 원로 임응식(1912년생)의 바로 윗 선배세대를 형성해 온 1903년생 동갑 작가들 현일영(1903~74).서순삼(1903~73).박필호(1903~81)를 함께 조명하는 사진 페스티벌이 세밑 사진계를 장식한다. 사진이 현대미술의 꽃으로 부각되는 지금 한국사진의 뿌리를 훑어보자는 것이다.

'현일영.서순삼 .박필호 탄생 1백년 기념 사진제'의 핵심은 일제 하 1920년대부터 '사진이라는 박래(舶來)물품'을 수용한 첫 세대에 대한 재평가로 요약된다. 주목할 것은 이들이 1960년대까지 활동하며 현대사진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도 조명된다는 사실이다.

페스티벌은 한국사진연구소.중앙대.사진전문 화랑이 진행하는 방식이며, 기념전시(5~18일 인사동 김영섭사진화랑).유고 재발간(도서출판 시각).학술 심포지엄(12일 안국동 느티나무 철학마당)으로 전개된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작가활동의 첫발을 사진관 운영으로 시작했다는 점이다. 당연히 초상사진(당시는 '인상사진'으로 불림)이 중심이었다. 사실 사진관은 작가 배출의 핵심 공간. 서순삼의 경우 1925년 평양에서 삼정사진관을 개업해 활동하며 초상사진과 예술사진을 함께 모색했고, 이후 평양사진조합 창립에 간여하면서 1929년 제1회 개인전을 열었다. 이 개인전은 지방에서 열린 첫 사진전으로 기록된다.

박필호의 경우도 서울 묘동에 연우사진관을 개업하며 작가생활의 첫발을 뗐다. 그는 사진교육과 평론 분야로 영역을 넓혀간 경우다.

휘문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일본인 조직에 대항해 경성사진사협회를 결성했고, 이후 경성 YMCA사진과라는 당시 유일한 사진교육공간을 통해 계몽작업에 역점을 뒀다. 해방 이후 계속된 그의 교육활동은 1965년 서라벌예대 사진학과 개설로 열매를 맺었다.

무엇보다 그의 타계 뒤 발간했던 글 모음집 '사진을 말한다'는 해방 전후 출간된 대표적인 사진론집이다. 바로 이 책이 이번 페스티벌 중에 재출간되는 텍스트다.

무엇보다 현일영은 완성도 높은 예술사진을 남긴 핵심작가로 평가된다. 만년의 작품들은 현대사진의 한 문법을 선구적으로 제시한 공로를 평가받아 왔다.

일제 하 만주생활 직후인 1932년 종로 2가에서 '현일영 사장(寫場)'을 개업했던 그에 대해 중진작가 주명덕씨는 "그의 나이 50대 이후 당시까지 작가들이 맴돌아 온 소재주의(새로운 피사체에 대한 지나친 관심)를 시원하게 극복하면서 현대사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방식은 '평범한 일상사물에 대한 시적(詩的) 관심'으로 요약된다.

본디 봉투였을 것으로 보이는 구겨진 종이 위에 놓인 사과 한 두쪽, 꽁초와 버려진 '아리랑'담뱃갑을 담고 있는 한 버스 터미널의 재떨이 등을 찍은 그의 단순하면서도 정갈한 작품들은 시적인 정취의 울림으로 연결되는 데 성공하고 있다.

현대 사진작가 구본창 등이 다시 프린트한 작품들은 이번 전시회에 나머지 작품 15점과 함께 선을 보인다.

한편 12일 학술심포지엄에서는 박주석(광주대) 교수.최인진(한국사진연구소장).진동선(현대사진연구소장)씨 등이 슬라이드와 함께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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