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시대 상황 생각해야 프랑스법 따라 양도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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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티에보(52.사진) 주한 프랑스 대사는 23일 "외규장각 도서 반환은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소송은 오히려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사관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파리에서 활동 중인 김중호 변호사가 지난달 파리 행정법원에 외규장각 도서 반환 청구 소송을 낸 데 대해 사견임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티에보 대사는 또 "프랑스 헌법과 국립도서관 조직법에 따라 국립도서관은 보관 중인 소장품을 양도할 수 없다는 원칙을 보장받는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는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편집자 주)

-한인 변호사가 외규장각 도서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는데.

"프랑스는 협상을 통해 양측이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입장이다. 프랑스 정부도 한국 국민의 정서를 이해한다. 그러나 프랑스 법은 양도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민간에서 소송을 제기했으나 이와는 별도로 양국 정부는 협상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문제이기 때문에 법적 소송은 오히려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해결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지난해 6월 한국과 프랑스는 외규장각 문서 디지털화에 합의했고 6월 말께 그 작업이 마무리될 예정이다. 한국 전문가들의 외규장각 도서 접근이 쉬워지는 것이다. 일반인도 접근할 수 있는 전시회를 프랑스가 제안했으나 한국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프랑스는 3개월 전시안을 내놓았으나 한국은 영구 전시안으로 맞섰다.)

-법적으로 양도 불가 원칙을 보장받고 있다고 했는데 어떤 법을 말하나.

"프랑스 헌법이다. 또 국립도서관 조직법도 프랑스 도서관은 소장품을 양도할 수 없다는 원칙을 보장한다."(※김중호 변호사는 병인양요가 지역 군사책임자인 피에르 구스타브 로즈 제독의 독단적인 판단 아래 치러진 군사행위이기 때문에 양도 불가 원칙의 근거인 '프랑스 국유 재산' 편입 자체가 부당하다고 반박한다.)

-당시 무력으로 가져간 것 아닌가.

"시대적 상황을 생각해야 한다. 힘으로 가져갔다고 말하나 포교하기 위해 한국에 왔던 신부가 살해당하는 상황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문화재가 유출된 것이다. 과거를 오늘의 논리로 해석하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양측이 만족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 반론="김중호 변호사가 소송을 내긴 했지만 프랑스 정부가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지금까지의 입장을 반복했을 뿐이다. 소송보다는 탈취 과정의 불법성을 프랑스에서 적극 홍보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본다. 프랑스 국민 대다수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백일현 기자

◆외규장각 도서=한국 정부는 파리국립도서관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 297권의 반환을 16년째 요구하고 있다. 이 도서는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약탈해간 것이다. 1991년 규장각을 관리하던 서울대가 외무부에 반환 요청서를 제출하면서 공론화됐다. 93년 고속철도(TGV) 판매를 위해 한국을 방한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과 '교류 방식으로 영구히 대여한다'는 원칙에 동의했다. 그러나 파리국립도서관 직원들의 반대와 프랑스의 정권 교체로 이 합의는 휴지조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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