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46년만의 "큰획"…남북토론회|만남자체가 성과…「귀환」소동 아쉬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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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91년은 여성사의 한 획을 긋는 의미있는 해였다.
여성계의 힘으로 분단 46년만에 한반도에서 남북여성의 첫 만남을 이루어낸 해였으며, 지방자치제 실시의 열풍 속에서 정치세력집단으로서 여성의 면모를 새롭게 부각시킨 해이기도 했다.
「김부남사건」으로 대별되는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에 관해 사회적 관심을 끌어모으는데 성공했으며, 여성고용문제와 직장에서의 셩차별문제도 여행원 임용제도를 폐지하는등 일부에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91년 여성계의 활동 가운데 가장 빛나는 족적은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서울토론회(11월)를 통해 이룩한 남북여성의 만남. 지난5월 일본 동경에서 열린 제1차 세미나에 참석한 이우정씨등이 제2차 회의를 서울에서 열 것을 제의, 반년만에 두차례의 예비접촉을 거쳐 성사됐었다.
여당구북한최고인민회의부의장등 북측 15명, 시미즈스미코 일본사회당참의원등 일본측 11명 및 우리측 여성계 인사 약 3백명이 참가한가운데 5일간 열린 이 토론회는 북측의 돌연한 조기귀환으로 아쉬움을 남기기는 했으나 남북여성들이 모처럼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 볼 수있는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초(3월)및 광역(6월)의회 의원선거를 계기로한 여성 정치참여도 여성사의 새장을 펼치는데 한몫을 담당했다.
30년만에 실시된 두 지자제 선거는 지금까지 정치의 소외계층이던 여성들로 하여금 민주화 바람을 타고 정계전면에 나서게하는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한국여성정치문화연구소주최의 세미나 「지방자치선거와 여성」(2월)을 비롯, 여성의 정치참여를 촉구하는 단체들의 행사가 줄을 이었으며, 정치참여를 위한 범여성모임이 탄생돼 선거법개정청원, 입후보자 직접 지원등의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70개 여성단체로 조직된 건전생활 실천 범여성운동연합은 부정선거 감시에 나서기도 했다.
선거결과 여성은 기초의회40명(0.9%), 광역의회 8명(0.9%)이 당선되는데 그쳤으나, 이같은 여성계의 활동은 서울시의회 부의장으로 조정순씨가 선출되는 실적을 남기기도 했다.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위한 여성계의 활동도 활발히 전개됐다. 어린시절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를 21년만에 살해한 김부남씨 사건은 성폭력특별법제정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4월에 문을 연 한국성폭력상담소를 위시, 한국 여성의 전화·대구여성회·김부남사건대책위원회등은 성폭력특별법제정위원회를 결성(8월)해 l백56회 정기국회에 입법 청원서를 냈다.
이선자씨(국민은행)가 국민은행장을 상대로 남녀고용평등법 동일임금동일노동조항 위반혐의를 들어 제소(3월)한 것은 일반행원과 여행원으로 분리채용하는 여행원 임용제도를 폐지(7월)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또 전시·군에 가정복지과를 신설, 여성공무원 승급의 숨통을 열어준 것도 여성계가 거둔 성과. 그러나 경기불황·산업구조개편에 맞물려 여성인력이 주변적·일시적 노동자로 전락하고 있는데 대해서는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과제로 남아있다.
여성계 인물로는 김갑현 대한YWCA회장이 이계정장관의 뒤를 이어 정무(제2)장관직에 올라「단체장 출신 장관」2대를 계승. 야권통합으로 이우정·박영숙씨가 민주당최고위원이 되기도 했다. 이밖에 디자이너 이신우씨(50)가 외국 디자이너로서는 최초로 일본 마이니치패션대상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여성단체장 제3세대 바람을 타고 박정희(서울 YWCA)·김춘강 (대한어머니중앙연합회)·신악균(한국여성유권자연맹)씨등이 수장의 자리에 올랐다. <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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