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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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상회담」이란 용어가 신문·방송·잡지 등에 본격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일이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과 소련 흐루시초프 공산당서기장이 1961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회담을 갖자 이들의 만남을 정상회담이라고 대서특필했다.
원래 정상외교란 말은 영국의 윈스턴 처칠경이 처음 사용했다.
그는 1950년 하원의원선거 유세에서 「정상에서의 협상」(Parley at the Summit)을 제창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를 상정하고 이 말을 꺼냈던 것인지는 정확히 알려진게 없다.
냉전시대에 동서양진영을 대표하는 초강대국 대표들간의 협상을 일컫던 정상회담이란 말은 이제 국가원수간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칭하는 보다 넓은 의미의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남북총리회담에서 화해·평화(불가침)·교류를 다짐한 합의서가 채택되자 「남북정상회담」얘기가 분분하다. 그 일자까지 그럴싸하게 제시되고 있다. 우리측의 총선과 북측의 김일성 생일(4월15일)등을 고려할때 2월중순부터 3월중순 사이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너무 서두르는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자 정부당국은 북측에 정상회담을 재촉한 일이 없다고 해명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정상회담문제는 그렇다치고 아이디어 경쟁이라도 벌이듯 백가쟁명의 각종 묘안들을 봇물 터지듯 연일 쏟아내는 정부당국과 재계·각단체들의 「성급함」은 좀처럼 그 열기가 식지않고 있다. 남북협력청의 신설,판문점사무소 쌍둥이건물설립,경의·경원·금강산선철도 내년중 복원,김포∼순안직항로 개설등….
정상회담을 비롯,이 모두가 7천만민족의 지상과제인 남북통일을 이루는데 필요할 뿐 아니라 또 꼭 해야할 일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완급과 선후를 가려야하는 「순리」가 있는 법이다.
한국 해외공관에 근무하는 외국인 직원들에게 가장 널리 통용되는 한국어중의 하나는 「빨리,빨리」다. 예부터 우리에게는 「애도 안배고 포대기부터 장만한다」는 속언이 있어왔다.
우리는 남북화해를 다짐했던 7·4공동성명이 남에서는 유신독재,북에서는 세습체제구축이라는 국내정치에 이용된 불유쾌한 기억도 가지고 있다. 무지개꿈을 그리던 북방교역도 적자투성이가 돼버렸다.
분단민족의 통일이 정치인이나 체제합의로 이루어진 예는 없다. 성급한 환상보다는 인내를 가지고 상호신뢰를 쌓아가면서 내실에 바탕한 단계적 접근을 도모하는 것이 오히려 통일을 앞당기는 지름길이 될 수 있는 것이다.<이은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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