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많아 성급한 기대는 금물”(대북 경제교류과제·전망: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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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북 개방 두려움… 여유갖고 임해야/“교류보다 일 원조에 눈독” 지적도
이번에 남북 「합의서」가 도출됐지만 원칙적 합의만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번 합의서 문안에서 우리측이 제의했던 구체적 교류협력사업들이 모두 빠지고 포괄적 의미의 문안들로 대체됨에 따라 남북간 교류협력을 위한 방안들은 사실상 내년 2월로 예정된 6차 고위급회담 이후에나 본격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합의서를 만들어낸 북한의 태도변화는 근본적으로 경제적 문제에 기인한다는 것이 정부분석이다.
남북간에 평화를 전제로 한 협상진전이 없는한 북한은 국제사회에서의 고립무원상태를 해소할 방법이 없고 사회주의권의 맹주격인 소련의 몰락으로 북한측은 최근의 경제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선 어떻게든 서방의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정부당국자에 따르면 북한이 경제난완화를 위해 서방 여러국가에 협력을 요청했으나 번번이 「남북관계의 우선 정상화」 논리에 밀려 무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의 합의서는 남북관계의 진전에 매우 중요한 전기임에는 틀림없지만 합의서교환이 남북관계활성화,특히 교류협력분야의 구체적 결과를 담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교류확대를 위해선 앞으로 협상해야할 일이 산적해 있고 그 과정에서 북한측의 본심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는 전제하에 정부는 「기다리는 자세」로 임한다는 생각이다.
김윤환 교수(단국대)는 『북한이 합의서 서명에 응한 것은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살아남기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이라고 지적하고 『북한이 노리는 것은 남한과의 경제교류보다는 일본의 원조』라고 분석하고 있다.
김교수는 공산권의 변화로 경제원조를 얻을 곳이 없어졌고 이 때문에 청구권자금을 노리고 일본과의 수교를 서둘렀으며,특히 일본과의 교류는 명분이 있는데다 「돈만 들어오는 것」이므로 남한과의 교류보다 체제유지에 미칠 충격이 훨씬 덜할 것이란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북한경제연구센터소장인 연하청 박사는 『기본적으로 북한이 이번 합의서에서 「개방」이라는 문구의 삭제를 강하게 요구해와 어느 정도 남북교류에 적극적인지 의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같은 시각은 정부당국도 비슷한데 유득환 상공부제1차관보는 북한이 「개방」이란 단어를 빼라고 주장한데 주목,북한의 경제교류에 관한 정책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보고 있으며 따라서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라는 자세다.
북한과의 경제교류는 북한 자체의 절박한 필요성과 이에 따른 적극적 접근자세가 활성화의 관건이지만 정부로서는 가능한한 이번 합의서에서 표출한 기본원칙을 바탕으로 수용가능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수락토록 해나간다는 기본방침을 갖고 있다.
「기다림」을 기본자세로 하지만 다양한 경제분야의 협상카드로 「공세」를 취해 북한의 「개방속도」를 가속화시킨다는 생각이다.
이번의 「합의서」 서명이 상당한 한계와 실무협상단계에서의 진통을 남기고 있지만 기획원 대외경제조정실의 분석처럼 「간접적·제한적으로 이뤄지던 남북경제교류가 정상적으로 발전해 나갈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해줄 것」은 물론이다.
따라서 남한 자체로 가능한 제도적 틀을 보완·발전해나가면서 북한의 「체제붕괴」에 대한 우려를 자극치않는 선에서의 현실적 대안을 마련,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같은 목적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교역의 확대이며 유득환 차관보는 「선교역·후투자」를 기본방침으로 밝히고 있다.
남북한의 교류확대를 위해선 먼저 해결해야할 제도적 틀이 많은데 지난 84∼85년 5차례의 남북경제회담에서 상당부분은 원칙적 합의가 이뤄졌고 북한이 마음먹기에 따라선 보다 구체적 작업도 생각보다 빨리 진전될 수 있다.
과거 남북경제회담에서는 ▲가격결정(국제시장가격을 고려,거래당사자간 합의로 결정) ▲결제통화(스위스 프랑) ▲수송(경의선연결 및 남측의 인천·포항,북측의 남포·원산개방) 등에 합의를 봤었고 ▲관세는 부과치 않는 것으로,교역량은 연간교역규모를 조정해 품목별로 상담하는 것으로,거래당사자는 교역품목별로 지정하는 기관·기업으로 의견접근을 본바 있다.
남북경제협력은 기본적으로 남측이 경제적 실리를 취하기보다는 통일로 이르는 경제·사회적 민족공동체의 형성을 위한 준비단계로서 의미가 크며 따라서 남한측의 대응자세도 이같은 전제하에서 여유와 아량을 갖고 임해야 한다.<박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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