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이란 사우디/소 회교권 6개공화국에 “추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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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세력확대 경쟁에 나서/먼 사우디도 독립비용부담 자청/“모스크바보다 메카가 가깝다”
소 연방이 붕괴되면서 소련 중앙아시아 회교권공화국들이 차제에 딴살림을 차릴 것인가를 놓고 번민하고 있는 가운데 인접 중동국가들은 세력확대를 위해 이들과의 손잡기 경쟁이 한창이다.
러시아등 슬라브계공화국들이 독립국가공동체 출범을 선언한데 대해 카자흐·키르기스·투르크멘·아제르바이잔·타지크와 우즈베크 등 소련내 회교공화국들은 일단은 독립국가공동체에 대한 합류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지난 11일 투르크멘공화국의 수도 아슈하바드에서 회교공화국지도자회합을 가진 자리에서 독자적인 「회교국공동체」 창설가능성도 협의하는 등 뿌리 찾기도 아울러 모색하고 있다.
동쪽으로부터 아프가니스탄·이란·터키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들 회교권 6개공화국의 3천5백만 회교도들은 1920년대 소련에 합병된 이래 줄곧 모스크바보다는 메카쪽에 친근감을 품고 살아왔다.
중동국가들은 이들이 소련으로부터 이탈할 경우 슬라브족의 지중해진출 방패역을 맡을 것은 물론이지만 중동의 세력판도 변화도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이들과의 손잡기 경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됐다.
특히 터키는 중앙아시아 주민들 대부분이 터키족임을 내세워 적극적으로 이들에게 접근,소련의 기세가 남아있던 지난 9월 이미 대규모 외교·통상사절단을 이들 6개공화국에 파견해 관계개선의 기초조사를 마쳤다. 이를 토대로 터키문화부는 키릴문자(러시아어 표기법)가 아닌 로마알파벳으로 표기된 교과서와 출판물 공급 등 일련의 문화지원계획을 마련해 놓았다. 터키국영방송의 서비스도 아제르바이잔까지 확대했으며 터키의 신문들도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시에서 판매되고 있다.
터키의 이같은 민족적 혈통을 내세운 공세적 접근에 대해 역시 이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란은 종교적·국가적 혈통으로 맞받아치며 아제르바이잔공화국 등에 힘겨울 정도의 경제원조를 약속,호메이니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고립탈피외교의 역량을 쏟아붇고 있다.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제르바이잔·투르크멘 등의 주민 80%가 회교도이며 나머지 4개 공화국에도 회교권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또 이지역 대부분은 19세기 초반까지 페르시아제국 영토였으며 투르크멘의 경우 1876년에야 이란과 국경선이 그어질 정도로 낯익은 이웃이었다.
이란이 자국의 소수민족을 자극할 것을 우려,중앙아시아의 소련공화국들의 독립에 소극적이던 최근까지의 입장에서 급선회하는 상황으로 바뀌자 멀리 걸프해의 사우디아라비아조차 회교권공화국의 독립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나서는 등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9일 세네갈에서 열린 회교회의기구(OIC) 외무장관회의에서 아제르바이잔의 회원권부여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한편 지난 4월 카자흐공화국과 체결한 경제협정을 재확인하고 회교권의 경제지원에 적극 나설 것을 다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앙아시아공화국들에 대한 이같은 적극적인 원조 방침은 이란 시아파회교도의 세력을 저지하고 수니파회교도의 세력을 확대하기 위한 것임은 물론이다.
중앙아시아 회교권공화국들은 슬라브족의 억압에 신물을 내면서도 경제적 자립기반이 부족해 일단은 독립국가공동체에 합류하는 방향으로 기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범터키민족주의와 범아랍주의,회교권내의 시아파와 수니파의 영향력 확대 싸움으로 빚어지고 있는 독립지원 경쟁과 미지의 독립국가공동체의 흡인력 틈바구니에서 소련중앙아시아 회교권공화국들이 최종적으로 어떤 형태의 장래를 선택할 것인지 아직 장담하기는 이르다.<이기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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