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핵소홀” 남북합의 우려/행정부·언론 「불만짙은 환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김일성 사찰압력 벗고 시간벌기 도운셈/불가침협정후 주한미군 위상에도 문제”
미국이 남북한 합의서 채택에서 가장 아쉬워 하고 있는 점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관한 사항이다.
미 행정부나 언론들은 이번 합의서 채택의 역사적 의미를 결코 과소평가하고 있지 않다.
남북한 문제는 당사자간에 해결하라는 원칙을 벗어난 적이 없는 미 행정부는 이번 합의서가 새로운 장을 연 것이라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워싱턴 포스트지등 미 언론도 이번 협정의 주요골자를 별도로 실으면서 통일로 향한 새단계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 말미에 한 가닥 불만이 있음을 솔직히 표현하고 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의 논평이나 국방부대변인 답변에 미국이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북한의 핵개발 문제였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남북한이 합의서를 교환,통일을 향해 한걸음 나아갔다 하니 환영은 하는데 북한이 개발하고 있는 핵무기문제는 어떻게 됐느냐는 의문인 것이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러한 남북간의 합의가 북한으로 하여금 핵개발을 못하도록 담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으며,국방부 대변인은 남북한간의 합의와 북한이 국제핵사찰을 받는 문제는 별개라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
미 언론은 이보다 좀더 강한 비판의 시각속에서 합의서를 보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한국정부는 핵문제에 대한 진전없이 이 협정에 서명함으로써 핵개발로 압력을 받고 있는 북한의 김일성을 고리에서 풀어주겠다』면서 이제 일본이나 미국에 더이상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치 않으면 교섭이나 수교를 하지 말라고 요구할 수 없게 되었다는 비판적 견해를 싣고 있다.
뉴욕 타임스지도 북한 핵개발 중지를 위한 아무런 보장장치도 없이 합의서가 체결된 점을 지적하며 북한이 이를 통해 오히려 시간만 벌게 됐다는 분석을 싣고 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핵무기 개발에 대한 국제압력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이러한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특히 두 신문은 한국이 핵문제에 대한 접근도 없이 합의를 서두른데는 북방정책의 결실로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싶은 노태우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도 작용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미국의 또하나 의문은 남북한간에 불가침 협정을 체결한다면 주한미군의 위치는 어떻게 되느냐는 점이다.
불과 한달전 딕 체니 미 국방장관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 북한의 핵개발 문제로 주한미군의 2차 감축을 중단키로 했는데 이러한 남북한 불가침 합의는 미군의 완전철수를 전제로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지는 북한이 과거 불가침협정을 체결하자고 제의할 때 한국정부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우려하여 이를 반대했던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정부나 언론은 남북한간의 이러한 합의가 실제로 긴장완화와 평화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믿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물론 이번 합의서가 품고 있는 그 포괄성을 비교할 때 과거의 협정이나 약속과 차원이 다르다고는 하나 과거 남북한간의 약속이 쉽게 깨졌던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과연 합의서대로 개방을 하고 교류를 할 수 있겠느냐는 의심이 있는 것이다.
스티븐 솔라즈 미 하원 아태소위 위원장은 남북한 합의서에 대해 『말보다는 행동이 중요하다』며 북한이 과연 이에 따라줄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표시했다.
미국은 한국정부가 합의서를 받아내는데만 급급하다가 목적이 달성되자 북한에 대해 지나친 낙관을 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