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보사 상장 '사회기금'의 두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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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최대 1조원에 달하는 사회공헌기금 조성이 생보사 상장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생명보험협회는 2주 전 22개의 생보사 관계자를 불러 "생보사가 상장하는 길이 마련됐으니 업계 차원에서 '정성'을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사회공헌기금을 마련하자는 의견을 냈다. 생보협회가 제시한 기본안에 따르면 상장 전에는 세전 이익 5%의 5%(총 0.25%), 상장 후에는 5%의 10%(0.5%)를 20년 동안 사회공헌기금으로 내야 한다.

사회공헌기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의 발언에서부터다. 윤 위원장은 올 1월 보험 최고경영자 조찬 강연에서 "(생명보험사 상장과 관련한) 소모적 논쟁을 끝내기 위해 보험업계 스스로 그간의 부정적 이미지를 씻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실상 생보사들에 상장에 맞춰 적극적인 사회 공헌에 나설 것을 주문한 것이다.

그 후 두 달여. 보험사 간 합의는 일단 이뤄졌지만 아직도 미조정을 놓고 물밑 진통은 여전하다.

삼성.교보생명 등 대형 보험사는 적극적이다. 상장 요건을 갖추고 있는 데다 상장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보험사는 사회공헌기금은 상장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상장을 통해 얻은 이익을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방향으로 쓰기 위한 자발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반면 당분간 상장 계획이 없는 중소형 생보사와 외국계 생보사는 떨떠름하다. 특히 외국계 생보사는 생보협회가 참여 여부에 대해 지난주까지 답을 달라고 했지만 지금까지 응답을 한 회사는 한 곳도 없다. "최고경영자(CEO)가 외국에 있기 때문" "해외 본사로부터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다"며 답변을 피하고 있다.

한 외국계 생보사 관계자는 "외국계 회사는 이미 본사가 해외에 상장돼 있는 경우가 많아 한국에서 상장할 계획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외국계 생보사 관계자는 "논리적으로 따지면 (사회공헌기금에) 참여하지 않아야 하지만 '국민정서법'이 무서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공헌 활동에 인색하다는 여론이 부각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참여연대.경실련 등 4개 시민단체는 최근 공동 논평을 통해 "주주가 과거 계약자의 기여를 인정.보상하는 것이 상장 문제 해결의 핵심인데 공익기금 출연으로 여론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김창규 기자

생명보험사 상장 논의 일지

- 1989년 4월 교보생명, 상장 위한 자산 재평가 실시

- 1990년 2월 삼성생명, 상장 위한 자산 재평가 실시

- 1990년 8월 재무부, 재평가 적립금 처리 지침 마련

- 1990년 12월 증시 침체로 상장 논의 보류

- 1999년 9월 금융감독위원회 산하 생보사 상장자문위원회 구성

- 2000년 12월 상장 논의 유보

- 2003년 6월 금감위 산하 상장자문위 재구성

- 2003년 10월 상장 논의 유보

- 2006년 2월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산하 상장자문위 구성

- 2007년 1월 생보사 상장자문위, 상장 최종안 발표

- 2007년 3월 생보협회, 생보사 차원의 사회공헌기금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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