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증권사 '지급결제'놓고 공방전 치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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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은행과 증권사 간 '지급결제'를 놓고 공방전이 치열하다. 재정경제부가 올해 입법을 추진 중인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중 '지급결제 업무 허용' 대목이 그것. "은행 고유 업무를 증권사에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은행 측과 "고객 편의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증권사 측의 다툼으로 자통법 국회 통과마저 불투명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 지급결제 업무가 뭐기에=지급결제란 은행 공동 전산망을 통해 자금을 이체하는 서비스다. 이를 통해 현금지급기 입출금, 신용카드 결제, 자동이체 등이 가능해진다. 현재까지는 은행 고유의 업무지만 재경부 원안대로 자통법이 시행되면 증권사도 이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별도의 은행계좌 없이 증권사 계좌만으로 모든 금융서비스를 누리게 되는 셈이다.

예컨대 최근 인기를 끄는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의 경우 현재 지급결제 기능이 없다 보니 일부 카드대금.통신요금.공과금의 자동이체는 할 수 없다. 또 증권사들은 은행과 비슷한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기 위해 은행에 가상계좌를 만들고 관련 수수료를 내야 했다. 하지만 자통법이 통과되면 이 같은 불편은 사라지게 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요즘 고객들은 은행 예금보다 펀드를 선호한다"며 "그런데도 증권 계좌 서비스를 제한하는 것은 투자자 불편과 불필요한 비용만 발생시킨다"고 주장했다.

은행업계도 할 말은 있다. 지급결제를 증권사에 허용하는 것은 금융 시스템에 큰 위험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주가가 폭락할 경우 결제 불이행이 잇따르면서 결제 시스템에 혼란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의 증권사가 결제를 못하면 다른 금융기관으로 연쇄 파급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연구원은 최근 지급결제 기능이 허용되면 은행의 급여이체 자금 100조원 가운데 20조원 정도가 증권사로 옮겨갈 것으로 예상했다.

◆ 대리전도 화끈=은행과 증권사의 '얼굴마담' 격인 은행연합회와 증권업협회 간의 신경전도 화끈하다. 지난해 말 유지창 은행연합회장이 "증권사에 지급결제를 허용하면 외국 대형 투자은행들의 경쟁력만 강화시키는 역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포문을 열자, 황건호 증권업협회장은 바로 "자통법을 통해 한국판 골드먼삭스가 탄생할 수 있다"고 맞받아쳤다.

양측의 '싱크 탱크' 격인 금융연구원과 증권연구원의 대리전도 치열하다. 9일 증권연구원이 심포지엄을 열고 자통법의 신속한 입법을 촉구하자 금융연구원은 18일 '자본시장 안정을 위해 증권사 지급결제를 불허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로 맞섰다. 재경부와 한국은행도 각각 증권업계와 은행업계를 대변한 논리 전파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공방은 최근 정치권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주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을 비롯한 12명의 의원은 증권사의 지급결제 허용을 유보하는 내용의 자통법 수정안을 발의했다. 지급결제 문제가 자통법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게 된 셈이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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