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환 손보협 회장 「현대사회와 국가경영」 특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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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경제­시장만능주의론 안된다/정부는 인기정책보다 필요땐 「개입」 해야/기업­근로자도 절제·근검으로 공생에 협조를/박봉환 손보회장·전 동력자원부장관
박봉환 손보협회장(전동자부장관)은 최근 국방대학원에서 「현대사회와 국가경영」이라는 제목의 특강을 했다.
「국가목표와 집단이익을 조화시킬 수 있는 민주화와 산업화」라는 부제가 붙은 강의를 통해 박회장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근대화 과정의 인간적 요소(자제와 근검절약)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거대기업과 근로자 집단이 서로 절제하고 정부는 대중영합적인 정치와 시장만능주의를 지양,필요한 개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성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다음은 강의 내용의 요약.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각이 최근 완전히 달라졌다.
미국의 새뮤얼슨 교수는 『최근 우리에게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경제외적 힘」으로 「제몫찾기」에만 몰두하다 보면 침체의 늪에 빠지게 마련이므로 보다 풍요한 미래는 현재의 회생과 자제없이 불가능하다』고 충고했다.
일본의 경제 평론가 고무라 나오기는 최근 『일본의 첨단기술을 한국에 팔아도 부러랭 효과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국이 지난 20년간 열심히 일한 것은 오직 배가 고팠기 때문이지 이제 배가 불러 포만감이 생기자 놀고 먹는 것이 최고의 이상인 한민족의 양반사상이 다시 나타났다. 한국은 영원히 일본의 경쟁대상이 아니다』고 평했다.
왜 이같은 일이 벌어졌는가.
선성장·후분배로 요약될 수 있는 우리의 개발전략 자체가 잘못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국민총생산과 중심의 개발전략에서 정의를 중심으로 하는 개발전략(교육·주거·소득분배·취업률·토지개혁 등)으로 궤도를 바꾸어야할 시기를 놓쳤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제대로 굴러가야할 궤도를 일탈하게 됐다.
허시먼의 터널효과론(국민소득이 계속 증가해도 소득격차가 계속 벌어지면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인 참을성이 없어지고 결국 사회불안으로 이어져 성장 자체가 위협받게 된다는 것)이나,1인당 소득 3천달러 전후가 이른바 마의 고비라고 한 아서 루이스의 이론등을 감안할 때 우리가 개발전략을 수정했어야 했던 시기는 86∼88년이었다.
전인구의 25%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고 대기업에 의한 토지소유집중 역시 심각하게된 현재의 상황,곧 국토공간질서의 부재도 그간의 발전전략이 건전하지 못했던 단적인 결과다.
결국 이제 우리가 직면하게 된 것은 경제발전의 동인으로서의 「인간적 요소」의 중요성이 몰각되고 있다는 현실이며,바로 이것이야말로 현 총체적 난국의 궁극적 원인이다.
근대화가 서구에서,특히 영국에서 먼저 이루어지게된 근본적인 이유는 첫째 국민생산력의 확충이라는 객관적 사실이며,둘째 그를 가능하게한 주체적 요인으로 근대적 인간유형의 존재가 결정적인 조건이었다.
근대적 인간유형의 요건은 바로 자본주의 정신이었으며 그것은 막스 웨버가 논한바 「세속적 금욕을 토대로 한 생활(직업)윤리」인 것이다.
또 동양에서 일본만이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하고 일찍이 선진국에 진입하게 되었던 것도 근대화 과정의 주류를 이루었던 사무라이(신풍)라고 하는 인간유형의 내면적 특성,곧 사무라이적 금욕과 죽음의 의미가 큰 받침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같은 독특한 인간유형이 없이 이른바 「민중민주주의 병」에 걸려 대중영합적인 정치를 펴다 전락한 아르헨티나,이데올로기에 따라 그때 그때 개발이론의 시험장이 됐다 결국 정체한 칠레의 경우는 귀중한 역사적 교훈을 주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기본적 딜레마는 역사학자 야코프 부륵하르트가 1백년전에 이미 지적했던대로 거대기업과 대중이라는 양대 세력간의 필연적인 충돌이다.
두 세력간의 충돌을 방지하고 조화와 공영의 길을 찾기위해 우리는 영국의 정치가 디즈레일리의 「성공의 비결은 목적 달성을 위한 절제에 있다」는 경구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
우리의 경우 대기업은 무조건적인 이윤추구를 버려야 하고 근로대중은 반이성적 욕구를 자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자제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국가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우선 국가는 경성국가라야 한다. 시장원리는 만능이 아니며 공공적 개입은 여전히 필요하다. 거대기업의 정부에 대한 관계는 수혜에서 협조로,이어 반목에서 공존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정부는 시장기능을 보완하거나 대기업관계에 있어 「할일을 하는」 정부가 되어야지 연성국가가 되어서는 안된다.
또 지도력의 원천은 국민적 욕구를 회피하지 않고 앞장서 해결하는 것에서 나오고 「지도」 없는 민주주의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대중에 영합하는 정치를 지양하는 「최적자」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결론적으로 민주주의의 과잉화를 방지하고 절제를 찾아야만 민주화와 산업화가 다 함께 성공하는 것이다.<정리=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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