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남기자의영화?영화!] 코로? 눈으로? 머리로 맡으세요, 그 향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와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중에 어느 쪽이 더 재밌느냐면, 저는 드라마의 손을 들어주겠습니다. 만화적인 캐릭터를 그야말로 코믹하게 소화한 우에노 주리와 다케나카 나오토의 연기도 연기지만, 음악 때문입니다. 이 일본 작품은 오케스트라의 지휘든, 피아노 연주든 남다른 재능과 열정으로 음악을 공부하는 젊은이들 얘깁니다. 만화로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연주회의 분위기를 드라마는 직접 음악을 삽입해 자유롭게 표현합니다.

영상의 위력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그야말로 공감각에 동시다발적으로 호소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코로 맡는 냄새는 어떨까요.

'향수'(22일 개봉 예정)는 패트릭 쥐스킨트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영화입니다. 주인공은 천재적 후각을 타고났죠. 음식은 물론이고 인간의 체취까지 그 성분과 함량을 직관적으로 알아채는 놀라운 재능의 소유자입니다. 배경은 18세기 프랑스입니다. 도시 곳곳에 온갖 악취가 범람해 향수가 귀부인의 필수품이던 시절이죠. 세속적으로 보자면, 주인공은 탁월한 향수 제조자로 막대한 부와 명성을 쌓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천재에게는 악마성이 있습니다. 황홀한 냄새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엽기적인 살인을 무감각하게 거듭합니다.

냄새를 스크린에 표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형 놀이공원의 입체극장에서는 냄새를 살포하는 특수효과를 곁들이기도 합니다만, 극영화에 적용할 방법은 아니지요. 자연히 영화 '향수'는 시각에 호소합니다. 벌름거리는 코를 클로즈업하고, 그 냄새의 진원지를 그때 그때 카메라에 담아 보여주지요. 이 방법은 한계가 있습니다. 원작소설은 페이지마다 수십 가지의 냄새를 언급하는데, 이걸 다 보여줄 수는 없는 일이죠.

반면 시각적 효과는 배가됩니다. 예컨대 '그는 살인을 저질렀다'라는 한 줄의 활자를, 영화는 구체적인 장면으로 보여줄 수 있으니까 훨씬 자극적입니다. 영화만 본다면, 그 결과 주인공의 천재적 후각보다 악마적 기질이 훨씬 두드러집니다. 냄새에 대한 기기묘묘한 상상력의 맛은 아무래도 원작소설보다 휘발된 인상입니다.

요전에 인터뷰차 만난 박찬욱 감독은 TV를 잘 보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대신 요즘 TV에서 뭐가 재미있는지를 젊은 스태프들에게서 귀동냥하곤 하는데, 그렇게 듣고 상상하는 것이 직접 보는 것보다 재미있다고 합니다. '행간을 읽는다'는 말이 활자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영상의 위력은,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강박관념을 낳곤 합니다. 할리우드를 비롯한 요즘의 영화들이 갈수록 장면 길이는 짧아지고 컷 수는 많아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합니다. 다 보여주마? 차라리 덜 보여주는 것이 때로는 훨씬 더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 아닐까요.

이후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