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 비정규직 가입허용] 정규-비정규 '勞勞 갈등'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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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노조가 비정규직 근로자를 사실상 조합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로 함으로써 비정규직 근로자의 처우 개선 문제가 노사협상의 쟁점으로 전면 부상할 전망이다.

금융노조는 지난 4월 금융단 임금단체협상에서도 이를 거론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정규직 근로자를 지원하는 차원의 문제제기 수준이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조직을 산하 특별지부로 받아들인 이상 앞으로 노사협상에선 이를 주요 쟁점으로 삼겠다는 입장이어서 파란이 예상된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조직이 금융노조 안에서 자리를 잡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이해관계 차이와 회사 측의 반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지부 왜 설립하나=갈수록 늘고 있는 비정규직의 처우가 그대로 두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게 금융노조의 판단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달 금융노조원 2천7백4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비정규직의 평균 월급은 1백22만원으로 정규직(2백95만원)의 41% 수준이었다.

특히 40대 비정규직의 월급이 1백50만원을 넘지 못하는 등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상대적인 임금 차이는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벌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더욱이 최근 기업들이 노조와의 마찰을 의식해 비정규직의 고용을 계속 확대하고 있는 것도 비정규직 근로자 조직화의 필요성을 높였다. 금융노조 산하 정규직의 수는 올 들어 지난 6월까지 4천5백86명(4.6%) 줄어든 반면 비정규직은 7천3백95명(22.1%)이나 늘었다.

◇넘어야 할 산 많다=무엇보다 정규직 중심으로 돼 있는 금융노조 산하 각 지부의 입장이 각기 다르다. 비정규직은 각 은행 노조에는 가입하지 않으면서 산별노조에는 가입하게 돼 있어 이들의 처우 개선을 두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A은행 노조위원장은 "정규직의 처우 개선도 미흡한 상황에서 금융노조가 비정규직 조직을 만들어 힘을 분산시키는 것은 조직의 세를 늘리기 위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SK노조의 경우 최근 도급업체 근로자를 노조원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노조비는 아직 안 받고 있다. 노조 내에서 정규직 조합원과 '구별'하고 있다는 얘기다.

기업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비정규직원에게 정규직 수준의 임금을 보장하고 복지수준도 맞춰준다면 기업의 부담은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노조의 요구를 다 받아준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비정규직을 쓰는 이유가 없어진다. 이 때문에 노조의 요구를 거부할 것이 뻔하다.

오히려 비정규직 채용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비정규직 채용을 줄일 수도 있다. 자칫하면 비정규직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고용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기찬.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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