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색문학」의 침투경계하자|「점령과문학」국제심포지엄 참관기…임헌영(문학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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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점령과 문학」을 주제로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15,16일) 국제문학심포지엄에 참가하고 전쟁유적지와 일본 여러지역을 살펴보면서 느낀것은 「무기도 기지도 없는, 빈곤이나 억압도 없는 푸른 평화의 땅아시아-태평양시대의 창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강한 바람이었다.
일본사회문학회 주최로 열린 심포지엄에는 한국·일본·괌·태국·인도네시아·중국·대만·필리핀·싱가포르·소련·미국등 11개국의 문인·학자등 2백여명이 모였다.
심포지엄에서 2차대전때 일본에 점렴당한 경험을 가졌던 심포지엄 참가국 문인들은 발제서두에서 예외없이 약탈·유린·억압등 비인간화에 대한 문학적 대응을 거론했다. 피침당시 이미 식민상태(인도네시아·필리핀등)였던 나라에서는 처음에 일본이 해방군으로 그려졌으나 이내 침략국으로 변모, 강력한 항일문학을 형성시켰는가하면 절대왕조국가들(태국·한국등)은 저항·방관·친일이 범행된 기묘한 과정을 거쳤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미 점령문학의 개념은 군사적인 것에서 경제적인 시야로 확대됐다』(황춘명 대만작가)는 지적이 나오면서부터 현재도 아시아국가들이 당면해 있는「점령」의 심각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시아 여러나라의 민족문학은 이미 일본의 경제적 점렴에 의해 사회·풍속·문화의 주체성을 잃은채 외색문학·통속문학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이에대한 문학적 대응이 새로운 문체로 제기되는 분위기였다.
특히 한국·싱가포르등 물질적 빈곤을 덜 느끼는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오히려 미·일등 선진국에 대한 경제적 점령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음에 참가자들은 주목했다.
『경제적 점령단계의 문학은 오히려 종주국에 대하여 친밀감을 느끼게 해 주체성의 상실을 낳게되며 생활·습관·언어까지 황폐화시킨다』(캐서린 아구온·괌학자),『태국은 지금도 일본의 경제적·문화적 점령에 시달리고있다』(탁 치치반나·태국작가)는 등의 대일비판은 『경제성장으로 대동아공영권을 달성하려는 새로운 내셔널리즘』(시오닐 호세·필리핀작가)에 대한 강력한 경고였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가장 가혹한 비판은 미국 사회학자에 의해 가해졌다. 존 러셀은 『일본은 미국에 의한 피점령의식을 씻으려 미국적 문화 그대로를 모방, 추종했다』며 『일본은 카키색군복입은 G1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이에대해 일본작가 오타마코도는 『일본은 가해자이자 피해자로의 양면성을 국제무대에서 교묘히 활용, 가해자로서의 죄의식을 잊고있다』고 자생했다. 일본문학에 침략영웅상만 드러나고 구국영웅상은 없다는게 그 단적인 예라는 것이 오타의 설명이었다.
심포지엄 참가자 일동은 『항일투쟁문학은 잉태됐으나 경제적 점령을 다룬 문학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부터 경제·문화·사회적 점령에 대한 문학이 나와 민족의 주체성을 일깨워야한다』고 결론지었다.
심포지엄 참석후 오키나와 일대의 전쟁유적지를 돌아보며 새삼 「점령」의 비인간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해자 일본을 보여준 「한국인 위령탑」과 미국에 의한 일본의 피해를 보여준 남풍원육군법원이 동시에 서 있는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오늘의 가해자는 내일의 피해자가 된다는 역사의 교훈을 오키나와 전쟁유적들은 말해주고 있다.
『인간의 혀를 자른 자는 누구누구인가/가축을 앗아간건 누구인가/등에난 상처는 어인 연고인가/가을과 함께 오는 기러기처럼/두눈은/늙어도 지쳐도/반드시 증언대에 서리라』는 오키나와 시인 천만신일의 시『증언대』처럼 피해자로서 한은 아직도 세계문학의 중요한 테마일 수밖에 없음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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