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한 심정 지푸라기라도 잡자"|입시 철이면 점집 성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지난해 S대학에 응시했으나 낙방했습니다. 올해는 꼭 합격해야하는데 어느 대학을 지원해야합니까.』 『그려, 생년월일부터 대봐.』
『72년 6월 2일생입니다. 태어난 시간은 오후2시고요.』 『임자년 미시생이라, 어디 봅시다.』
대학입시 원서마감을 이틀 앞뒀던 지난 23일 서울 동선동 미아리 점술촌 T동양철학관.
지난해 S대학에 응시했으나 근소한 점수 차로 낙방한 재수생 김모군(19)이 맹인도사 곽모씨(45)앞에서 진학을 희망하는 4개 대학중 합격이 가능한 대학을 점쳐줄 것을 청한다.
맹인도사는 손가락 크기의 쇠통을 흔들었다. 그리고 쇠통 속에서 가는 쇠침3개를 뽑아 고개를 끄덕이다 처방을 내놓는다.
『동쪽방향이 길하니 A대로 가는 것이 좋겠구먼….』 김군은 탁자 위에 복채 1만원을 얹어놓고 방을 나왔다.
『다음 사람 들어오시오.』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군의 친구 1명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입시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역술가를 찾아 합격여부를 점쳐온 것은 오래 전부터 성행해온 관습.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본인이 직접 운명철학관을 찾아 합격·취직운세를 점치는 입시생, 남녀대학생들이 늘고있다.
해마다 가열되는 입시·취업경쟁이 만들어낸 「젊음의 신풍속도」.
점을 치는 수험생 중에는 합격이 가능한 대학과 학과까지 족집게처럼 찍어줄 것을 애걸하는 「애걸형」도 있어 도사들이 진땀을 빼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일부 역술가들은 적중확률을 높이기 위해 직접 입시학원을 찾아 지원경향 등 입시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 사주팔자와 운세·음양오행과 방향 등을 따져 처방을 내리기도 한다.
역술가들의 권유에 따라 잡귀를 쫓아내고 합격의 길로 이끌고 인도하는 「과거급제부적」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수험생들도 많다.
부적 값은 3만∼4만원에서 수십 만원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
대학입시보다 더 좁은 관문을 뚫어야하는 취업시즌을 맞아 취업운세를 점치는 대학생들도 많다.
미아리에서 20년 동안 거북점을 봐주고 있는 김모씨(50)는 『매일 10여명 안팎의 사람들이 점을 치러오는데 그중 4∼5명은 취업운세 상담자들』이라고 했다.
종로3가의 「사주공간」「천기누설」 등은 코피도 제공하고 점도 봐주는 이색카페.
이들 카페에는 취업시즌인 9월부터 11월까지 매일 30∼40명의 예비취업생들이 몰려 성황을 이룬다.
「사주공간」의 역술가들은 서울시내 각 대학에서 역학공부를 하는 대학생들이 모여 만든「동아리패」회원들.
이들은 한사람당 5천원씩을 받고 입시·취업 사랑운세 등을 점치거나 관상·손금보기 등으로 운명을 예고해준다.
최첨단 장비를 이용한 컴퓨터점도 대학생들의 총애(?)를 받고있다.
컴퓨터점 값은 1천원 안팎. 생년월일, 태어난 날·시간, 성별을 신청서에 적어내면 2분30초 내에 점괘를 볼 수 있다.
대학생 등 젊은이들이 점집을 즐겨 찾는 것은 점괘를 믿기보다는 입시·취업을 앞두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초조한 심정 때문이라는 것이 대학생들의 자체 분석이다.
그러나 교육전문가들은 『자신감이나 자아실현을 위한 확신감이 부족한데서 비롯되는 요행심리의 만연은 젊음을 병들게 하는 사회병리현상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