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열린우리당, 무차별 영입 문제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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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이 뭔가. 정치개혁과 지역할거 정치의 타파인가. 아니면 또하나의 잡탕식 대통령당을 만들자는 것인가. 열린우리당이 새 정치를 하겠다는 비전은 고사하고 원칙과 기준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외부 인사 영입과정을 보면서 제기되는 질문이다.

신당은 자신들이 표방해온 개혁적 정체성과 거리가 먼 인사들을 세(勢)불리기 차원에서 포함시켜 당 내외의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그 아들이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에 고발돼 조사받고 있는 단체장과, 이런 저런 범죄 전력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지방의원을 포함시켰다. 심지어 지난 대선 당시 이회창 대통령후보의 특보를 지냈던 인사까지 득표력을 고려해 영입했다. 본인이 의사를 밝히지 않은 몇몇 명망가들을 일방적으로 포함시켜 항의 사태까지 야기하고 있다. 필연적 경쟁 관계인 민주당과의 세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이처럼 무차별 영입을 한다면 정치개혁 간판을 내리는 것이 옳다.

또 인지도가 높은 장.차관과 청와대 비서들을 징발하겠다고 끊임없이 흔들어 대는 것도 문제다. 이것은 이라크 파병.부안사태 .경제난.부정비리 척결 등 중대 현안 해결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할 고위 관료들을 총선용 구원투수 정도로 여기는 한심한 발상이다. 승리지상주의에 함몰돼 국정 공백과 혼선을 부추기는 것이 과연 '정신적 여당'으로서 적절한 자세인가. 이러니 제 아무리 개혁을 외쳐도 지지율이 10%도 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구시대적 작태를 연출하기 위해 집권의 기반이었던 민주당을 버리고 뛰쳐나와 신당을 창당했는가. 열린우리당은 원칙도, 기준도 없는 영입 공세를 자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년 총선이 아닌 국정을 최우선시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분명한 의사표시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무원칙한 세불리기가 아닌 국정운영의 성적표로 총선에 임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말로는 개혁하겠다면서 과거와 똑같은 행태를 벌인다면 누가 믿고 지지를 해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