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수험생에 편안한 잠자리를…/미분양 주택·노인정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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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민박가정 모집 1,230가구 참여 신청
「수험생들에게 편안한 잠자리를」­.
다음달 17일 실시되는 대학입시를 앞두고 대학주변 숙박업소의 방이 동나고 예약권에 웃돈까지 붙어 거래되는 가운데 서울시가 추진중인 「지방수험생 무료숙식제공」 계획에 호응,잠자리와 따뜻한 밥을 제공하겠다는 시민들의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
18일부터 시내 각동사무소에서 접수를 시작한뒤 6일만인 23일까지 예상보다 훨씬 많은 1천2백30가구(숙박가능인원 1천8백52명)가 참여를 신청,삭막한 사회에도 아직 마르지 않은 훈훈한 인정과 「함께 사는 공동체」의식이 남아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서울시측은 이같은 추세라면 이달말까지만 신청을 받아도 7만여명으로 추정되는 전체 지방출신 응시생의 10%에 달하는 7천명 정도가 무료민박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처음 동단위의 새마을 부녀회·바르게살기협의회원 등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신청은 일반 가정으로까지 확산되면서 접수창구엔 「가슴찡한 사연」들도 쌓이고 있다.
21일 민박가정등록신청을 한 서울 아현동 송림소아과 원장 이창란씨(72)는 『고향인 평북 강계에서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기위해 백리길이나 걸어가 밤늦게까지 잠잘 곳을 찾던 기억이 떠올라 신청했다』며 『빈방이 한칸뿐이어서 2명밖에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고향이 경북 영주인 건축업자 강종건씨(40)는 최근 다가구주택 한채를 지었으나 주택경기 침체로 방 4개가 미분양되자 이를 지방수험생 10명의 숙식장소로 내놓아 화제.
강씨는 『이왕이면 구청에서 같은 고향의 수험생들을 배정해 줬으면 좋겠다』며 『다만 10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위해 식사준비를 해야할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마포구 신수동 통장협의회(회장 한상록·54)는 사업에 동참하는데 뜻을 같이했으나 저소득층이 대부분이어서 마땅한 대상가구를 찾기 어렵자 지난 4월 준공한 깨끗한 2층 양옥의 동네 노인정을 홍익대 응시생 20여명에게 제공키로 결정했다.
통장들은 저마다 2만원씩을 추렴,새담요와 식기까지 준비했으며 홍익대 교무처 관계자들은 직접 시설을 둘러본뒤 만족해 했다.
상수동사무소에 시외전화로 숙박문의를 했다가 동사무소의 행정주임 민웅기씨(33)의 주선으로 민박가정을 배정받았다는 제주출신의 부성철군(20·재수·연대 응시예정)은 『지난해엔 시험을 보기위해 서울에 올라왔다가 여관방을 못구해 하루 5만원을 주고 연대앞 하숙집에 머물렀다』며 『뜻깊은 사업에 동참해준 서울시민들을 위해서라도 시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이효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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