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경제자유구역에 '자유'를 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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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우리나라도 2003년 경제자유구역법을 제정하고 인천의 송도.청라.영종 지구와 부산.진해, 광양만 일대를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해 개방화시대의 국제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러면 경제자유구역이 지정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현실은 경쟁국들에 비해 어떠한가.

경제자유구역의 초심(初心)은 '경제치외법권지역'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비록 무관세, 무비자, 무노동쟁의, 영어의 공용화, 외국통화의 자유로운 통용과 송금 등과 같은 초기의 이상은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지만 적어도 세계 기준(global standard)에 맞춰 외국 기업과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경제자유구역에서만큼은 국내의 법.제도.관행의 적용을 배제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경제자유구역은 국내의 법.제도.관행으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경제자유구역에서의 모든 개발 행위는 여전히 국내법에 의한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계획 결정이나 환경영향평가 등의 대상이다. 나아가 인천경제자유구역은 수도권 과밀 억제를 위한 수도권정비계획의 감시도 받고 있다. 외국인에게 주택을 우선 분양해 주고 싶어도 주택법을 따르면 그렇게 할 도리가 없다. 심지어는 '1.11 부동산대책'에 따른 분양가 원가공개와 상한제에 대해서도 경제자유구역은 예외가 될 수 없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경제자유구역은 백년대계의 국가전략사업이 아닌, 지역 현안을 해소하기 위한 지역개발사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법 제정 당시부터 논란이 되었지만 경제자유구역청이 광역자치단체의 산하기관으로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수년간 외자 유치 전문가로서 소명을 다해야 할 경제자유구역청 직원들은 자치단체의 일상적인 인사이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자치단체장이 바뀌면 경제자유구역에 대한 전략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리하여 경제자유구역에 먼저 들어선 것은 지역주민이나 국내인을 위한 아파트다. 얼마 전 송도 오피스텔 분양의 해프닝이 경제자유구역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은 경제자유구역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결국 경제자유구역은 '우리끼리의 잔치'로 그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아도 경제자유구역의 성패는 결국 사람이 만들고 사람에 의해 운영되는 '제도'와 '조직'에 달려 있다. 중국을 비롯해 과거 사회주의 국가였던 러시아.카자흐스탄.베트남 등이 개방화를 통해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고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자원이 발견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부존자원은 예전과 같지만 국가경영 철학과 비전이 바뀌고, 사람들의 마인드가 바뀌고, 이를 뒷받침해 주는 제도적 환경(institutional environment)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자원이 없는 홍콩.마카오.싱가포르.네덜란드.아일랜드도 마찬가지다. 두바이의 경제자유구역 책임자의 말이다. "당신의 투자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창출될 수 있다면 경제자유구역에서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과 제도적 환경을 바꾸지 않는 한 우리의 경제자유구역은 중국 등 주변국과의 경쟁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다.

최막중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