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행정」의 예정된 결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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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고속도 통행제한 철회
정부외 경인·경수고속도로 소통개선대책은 끝내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도 못 그린」 모양으로 결말이 났다.
주무부처인 교통부는 19일 발표에서 『2인 이하 승용차 통행제한을 강행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적이 없지 않느냐』고 발뺌하고 있지만 청와대와 민자당을 비롯, 관계부처·기관에서는 『국민의 일상생활과 직결된 일을 충분한 사전준비나 검토도 없이 서두르다 정부와 행정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렸다』는 비판의 시각이 우세하다.
경인·경수고속도로의 만성적인 체증해소대책의 필요성은 지난달 4일 최각규부총리가 노태우 대통령에게 제7차 5개년 계획을 보고하면서 제조업 경쟁력 약화요인의 하나로 이 문제를 거론, 『시급히 대책을 세우라』는 지시가 현안으로 제기됐다.
8월초 휴가철의 하루고속도로 통행량이 명절수준을 넘어서 그 여파가 지방에서의 농산물 반입을 막는 바람에 물가가 뛴 경험을 한 경제부처로서는 모종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왔던 터였다.
더구나 상공부는 전임 김창식교통부장관 때부터 수출부진탓을 경인축 체증에 돌려왔던 만큼 상공차관에서 교통부장관으로 승진 입각한 임인택장관으로서는 남다른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재임 초부터 휘발유세·고속도로 통행료인상등 인기 없는(?) 승용차이용 간접억제책을 정책에 반영하려 추진해온 임장관은 일단 청와대의 감이 전달되자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극약처방을 필요로 하게됐고 결국 교통개발연구원에서 검토 제시한 「패키지」정책중 「2인 이하 승용차 제한」부분만 빼내 서둘러 발표했었다.
교통부는 후속조치로 지난달 18일 16개 관계부처·기관 실무국장회의를 소집, 「2인 이하 통행 제한」이 고위층의 뜻(?)인 것으로 전달했고 지난달 25일에는 교통개발연구원주최로 공청회를 열어 여론수렴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인천·수원지역주민들의 거센 반발이 뒤따랐고 통행제한의 실무를 담당할 경찰에서 제한의 근거법규로 도로교통법을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 하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무엇보다 수출업체를 대표하는 무역협회에서조차 『고속도로 통행제한은 국도혼잡으로 전가돼 수출화물의 주요수송로를 막는다』고 반대의견을 표시하는 바람에 교통부는 사면초가의 궁지에 몰렸다.
이 과정에서 교통부 안을 「청와대 지시」로 각색한데 대한 청와대로부터의 불쾌감 표시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2일의 당정협의에서 『총선을 앞두고 여당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쪽박을 깨려한다』는 인천출신 의원들의 강한 반발은 대책 안을 백지화목으로 급선화시켰다.
결국 18일 오후 승용차 함께타기, 통근버스 운영권장, 제2경인고속도로 공기단축등 통행제한 백지화에 따른 부처별 후속조치로 가닥을 잡은 정부는 19일 아침 정원식 국무총리에게 보고했고 교통부는 민자당에 설명한 뒤 공식 발표하도록 했으나 언론이 먼저 보도해 교통부는 「행차뒤 나팔」이 됐다. 일방적인 「독주행정」의 당연한 결말인 셈이지만 되풀이되어서는 안될 교훈이 아닐 수 없다.<엄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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