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스님(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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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옛날 얘기다. 홍도스님이 어느날 금강산 돈도암에 들렀다. 일주문을 막 들어서려는 순간이었다.
푸른뱀 한마리가 나와 모래밭에 꼬리로 글을 썼다. 글의 내용은 자못 인간을 엄히 경책하는 칠언절구였다.
『내가 다행히 사람으로 태어나고 또 불법을 만나,여러 겁을 수행하여 성불하기에 이르렀으나,솔바람이 불어와 눈에 티가 들어가기에,한번 화를 냈더니 뱀의 몸을 받게 됐네.
뱀의 몸을 받고 보니 이루 말할 수 없이 한스럽구려,이제 내 차라리 몸을 바수어 가루를 만들지언정,맹세코 평생토록 화를 내지 않겠네.』
뱀은 글의 말미를 다음과 같이 끝맺었다. 『뜻은 품었으나 말로 다 못하니,꼬리로나마 글을 써서 나의 진정을 알립니다,원컨대 스님께서 이 글을 옮겨 써 벽에 걸어놓고,화가 날때가 있으시거든 쳐다보십시요.』
홍도비구의 이야기는 불가에서 삼독의 하나로 절대 삼가는 성냄(진)을 경계한 것이다. 탐욕이 지나치면 아귀보를 받고,화를 자주 내면 지옥에 떨어지고,어리석음이 무거우면 축생이 된다는게 삼악도의 윤회업보다.
세상을 살다보면 어디 성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색계의 분노를 일생동안 억제하며 참고 살기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가 치미는 일이라도 웬만하면 참는게 좋다. 반드시 불가의 도를 따르려는 수행으로서가 아니다. 일상의 삶을 위해서도 그렇다. 화를 내고 고함을 지르지 않아도 여유를 두고 곰곰 생각해 보면 일이 잘 풀리는 묘한 방법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요즈음 국내외의 뉴스 초점이 되고 있는 「현대사태」를 보면서 새삼 떠올려보는 한 생각이다. 사태를 둘러싼 아지랑이속에는 진노니,격노니,화를 냈다느니 하는 「성냄」의 여운들이 적지 않게 아른거린다.
정부와 현대 양측 모두가 서로 「법대로」라고 주장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질 않는다. 이제 정부도 한발짝 뒤로 물러서서 성냄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현대도 삼취정계로 성냄을 삭여 성난파도를 잠재우는듯 하다.
그저 조금만 참고 기다리는 여유를 평상심속에 지니기만하면 된다.<이은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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