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인 문화공간 정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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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2일 오후5시쯤 대학로안 마로니에공원에서는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양복을 입거나 가벼운 점퍼차림의 20대 직장인·대학생등 30여명이 4∼5개조로 나뉘어 기타를 치며 합창을 하고 있었다.
국내가수들의 노래에 간간이 외국의 팝송까지 화음을 맞춰 노래를 부르다보면 어느새 이곳을 지나던 다른 젊은이들도 멈춰서 스스럼없이 가사를 따라부르고 박수를 보내는 모습이다.
회사원 김경덕씨 (28·서울숭인동)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공원에서 함께 기타를 치다 정기적인 만남으로 발전하게 됐으며 매일 20명정도가 학교수업이나 직장을 마친뒤 기타를 가지고 모여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기타를 가르쳐주기도 한다』며 『술을 마시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보다 훨씬 건전하고 금년 연말께에는 대학로 기타인 동호회도 결성할 예정』 이라고 말했다.
문예회관 뒤쪽에 있는 「도서관식 서점」도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장소.
이곳은 30평규모의 서점 한가운데 원탁을 만들고 의자 20여개를 준비해 누구든지 책을 사지 않고도 앉아서 편안하게 독서를 즐기다 갈수 있도록 하고있다.
서점주인 정주득씨(40)는 『주로 심령과학·초자연·단전호흡에 관한 책이 인기가 있으며 이곳에서 만난 젊은이들끼리 요가·UFO동호인 그룹을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대학로에 있는 동숭아트센터·나우갤러리·동숭미술관등 화랑가는 젊은 화가들을 중심으로 전위·대중미술이 주류를 이루고있어 젊은이들의 키다란 호응을 얻고있다.
5일부터 샘터화랑에서 1주일간 「69·91 일러스트 3인전」을 가진 오유경씨(25·여·프리랜서)는 『순수미술에 치중하는 인사동보다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아 대학로를 선택했다』며 대학생등 젊은층의 발길이 잦다며 흐뭇해했다.
문예회관을 중심으로 밀집해 1년내내 공연이 그치지 않고있는 14개의 극단도 젊은이들이 즐겨찾는 곳.
이처럼 서울동숭동 대학로가 젊은이들의 건전한 문화·휴식공간으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대학로는 85년 서울시에 의해 문화예술의 거리로 지정됐으나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수백에서 수천명에 이르는 청소년들이 몰려 술을 마시고 편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등 탈선과 방종, 무질서와 폭력이 난무하는 바람에 시민들의 눈총을 받아 왔었다.
그러나 최근 대학로의 본래 의미를 살려야한다는 반성이 젊은이들 사이에서부터 일기시작해 건전한 동호인 모임이 속속 생겨나고 경찰의 꾸준한 단속에 힘입어 대학로가 새로운 「젊은이들을 위한 광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대학로에서 3년째 음식을 팔고 있는 이모씨(45)는 『새로운 대학로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지속적이고 애정어린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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