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물·염색 「환경쇼크」이후 몸살(신발·염색·직물산업구조 방향: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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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소요액검토” 자금지원 대책 어정쩡/기술개발통한 대체산업 전환시급
『바이어로부터 직물수출주문을 받고도 염색산업에서의 병목현상 때문에 납기를 못지켜 주문을 취소당하고 있습니다.』
대구시 소재 수복섬유공업(주) 조상호이사는 지난 4일부터 비산염색공단에 대한 부분조업정지(3부제 조업)이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종업원 1백65명 규모의 중소기업인 이 회사는 한달 적정재고가 90만야드인데 비해 현재 재고가 2백30만야드나 쌓여있기 때문이다.
대구 직물업계의 전체재고는 적정재고(1만야드)를 훨씬 넘어선 3만야드에 이르고 있다.
신발업계가 후발개도국의 추격에 쫓겨 경쟁력을 잃고있는 것과는 달리 대구직물·염색업계는 수출물량을 확보해놓고도 페놀유출사고 이후 부쩍 높아진 환경의식 때문에 몸살나고 있다.
『바이어는 한번 뒤돌아서면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저가품은 이미 인도네시아·중국에 밀리고 있는데 고급직물쪽으로 전환하려는 시기에 「염색쇼크」가 났어요. 이 사태가 장기화되면 우리나라의 섬유산업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됩니다.』
이충기 이화염직(주) 대표이사는 『3부제 조업이후 가동률이 60%로 떨어졌지만 2백50명의 종업원월급을 종전대로 지급해야해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3부제 조업을 하지않는 업체근로자들이 「저쪽 공장에서는 3부제 조업을 하고도 같은 임금을 받는다」는 반발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염색산업이 대구시민에게 「천덕꾸러기」가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비산염색단지에 대한 대구·부산시민들의 반응을 놓고 『5천달러의 소득수준에 있는 우리 국민이 2만달러수준의 선진국과 같은 환경을 요구하는 것은 걸맞지 않다』는 시각도 있으나 앞으로 환경문제가 국내산업의 존폐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다.
그러나 대구염색업계는 『폐수유출사실이 지나치게 과대포장됐고 정부의 졸속행정에 많은 잘못이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김금호 대구염색공단사장은 『폐수배출기준을 1백50PPM에서 1백PPM으로 강화,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올해부터 규제에 들어갔으나 폐수처리장의 설계에만 1년,건설까지는 최소 2∼3년이 걸린다는 점을 도외시한 탁상행정』이라며 『1∼8월중 업계의 배출부과금만 1백5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더구나 다른 지역의 경우 폐수 배출허용기준이 2백∼3백PPM에 이르는 곳이 많은데 대구시가 하수종말처리장을 제대로 갖춰놓지 못한채 비산염색공단에만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구염색·직물업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없지않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직물의 경우 산업합리화업종으로 지정한지 5년이 넘었고 염색업계도 돈만 버는데 급급했을뿐 환경개선을 위한 스스로의 노력을 게을리했다』고 말했다.
부산신발업계,대구염색·직물업계의 목소리가 다른 지역,다른 업종보다 큰 것도 지역적 특수성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논란을 빚어온 염색·직물업계에 대한 2천억원의 금융자금지원문제는 11일의 경제장관회의에서 『소요액을 검토해 최대한 지원한다』는 쪽으로 최종결론이 내려졌다.
이들 업계에 금융자금을 별도배정할 경우 「특혜」 소지가 있는데다 그렇다고 자금지원을 하지않겠다고 할 수도 없어 내려진 어정쩡한 결말이다.
이들 업계는 그러나 자금 지원보다도 섬유업이 사양산업으로 비쳐지고 있는데 대해 무엇보다 못마땅해하고 있다.
이충기사장은 『염색·섬유산업이 사양산업이라면 대체업종이 뭐냐,작년도 섬유수출이 1백48억달러였고 이중 국내가득액이 1백20억달러나 됐다. 섬유수출대국인 이탈리아와 일본이 개발도상국이냐』고 반문하다. 결국 최근 우리경제가 겪고 있는 구조조정은 후발개도국의 추격과 환경문제에 부닥쳐 사양화과정이 두드러지고 있는 반면 기술력부족으로 대체산업개발이 늦어지고 있는데 어려움이 있다.
상공부 한영수 중소기업정책과장은 『산업구조조정에 대응한 정부와 업계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전문화를 통해 첨단산업분야에의 진출을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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