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실종,시민연대로 막자(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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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더 이상의 패륜이 없을 듯한 잔혹행위가 이 사회에서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어린 소녀의 성장을 억제하면서까지 굶기고 때려서 곡마단의 곡예 기술을 배우게 하고 돈을 챙긴 어른이 있었는가 하면 12세의 국민학생을 술집접대부로 내놓고 술장사를 벌인 어른도 있었다.
그뿐인가. 노름빚을 메우기위해 길가던 소년을 유괴하고서는 소년이 운다고 목졸라 죽이는 야수와 진배 없는 패덕행위까지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일련의 잔혹행위가 겉으로는 어엿한 사장이고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괜찮은 집안의 자식으로,시민으로 행세하는 어른들에 의해 저질러졌다는데 우리는 깊은 분노와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낀다.
이들 모두가 굶주림에 허덕이며 이성을 잃었거나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어쩔 수 없이 저지른 범죄가 아니다. 힘없고 연약한 어린이들을 이용해서 한푼의 돈을 더 벌기 위하여 마치 기계처럼 장애자 어린이마저 앵벌이로 동원하는 파렴치의 극한 세태에 우리는 살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하여 어린이들을 기계처럼 이용하고 휴지처럼 구겨버리는 어른들의 이 패덕행위를 어떻게,무엇으로 막을 것인가.
정부는 수원 이득화군 유괴살인사건이후 연말까지 유흥업소에 대한 집중단속을 펴고 유괴 납치등 반인륜적 잔혹행위에 대해선 어떤 범죄행위에도 우선하는 강력대응을 지시하고 있다.
이미 정부가 선포한 범죄와의 전쟁이 1년을 넘어선 지금까지 정부의 실적 발표와는 달리 국민들의 범죄에 대한 체감불안은 날로 높아가고 있다. 특히 어린이를 상대로한 잔혹범죄가 빈발할수록 체감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는 점에 치안당국은 깊이 유의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사건이 생기면 의례적으로 발표하는 치안대책이 아니라 반사회적 잔혹행위의 뿌리를 뽑지 않고서는 어떤 치안도 유지될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연말이라는 한시적 대응책이 아니라 전천후 전방위의 치안대책이 장기적 계획에 따라 추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린이 유괴나 납치,또는 잔혹행위란 경찰의 힘만으로는 효과를 거둘 수 없음은 이번 사건에서도 입증되었다. 시민의 제보와 참여 없이는 실효를 거둘 수 없는 악의 뿌리다. 내집,내자식의 실종과 유괴에 불안해하고 가슴죄는 소극적 자세보다는 시민 모두가 나서서 잃어버린 아이,학대받는 어린이,공포에 떠는 어린이를 찾아나서고,제보하고,고발하는 능동적이고도 자구적인 자세를 보여야 할때라고 생각한다.
어린이가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란 죽은 사회일 수 밖에 없다. 어린이를 학대하고 살해하는 행위는 우리 사회의 오늘과 미래를 어둡게 하고 망치는 자해·자살행위다.
어린이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서 정부와 시민이 연대하고 자구하는 노력을 항시적으로 보일때에야 비로소 그 사회는 범죄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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