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 범양상선 “좌초위기”/고 박회장아들 대표이사 선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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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채권은행단선 “취임 곤란하다”
87년 4월 박건석 회장의 투신자살사건후 4년반이 넘도록 은행관리상태로 표류중인 범양상선이 최근 채권은행단과 대주주들의 불화가 노골적으로 표면화되면서 다시 휘청거리고 있다.
범양상선은 8일 주총을 열고 고 박회장의 외아들인 박승주 현감사(29세·지난 3월취임)를 대표이사회장으로 선임했다.
고박회장 유족들의 지분이 56.2%에 달하므로 사실 주총을 열고 대표이사가 되는 것은 요식절차에 불과하다.
만 29세로 경험도 적은 그가 경영전면에 나선 것은 은행측의 간섭을 줄이고 자기구상대로 회사를 끌고 나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현재의 김광태 사장은 지금과 같이 회사 내부일을 챙기고 신임 박회장은 관공서·은행등 대외업무를 전담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박회장은 『회사가 관리은행(서울신탁)에 의해 불법적으로 장악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채권은행단은 그의 회장취임 자체를 반대하고 있어 앞으로 양측은 더 잦은 마찰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자본금 3백83억원을 까먹고도 누적결손이 1천8백53억원에 달해 휴지조각에 불과한 주식을 가진 대주주이면서도 권리만 주장한다는 것이다.
은행에 7천6백억원의 빚을 졌으면서도 대주주로서의 자구노력은 전혀 없었으며 산업합리화업체로 지정받으면서 약속했던 1백억원의 증자도 여직껏 이행하지 않고 회사부채에 대한 연대채무보증도 계속 거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은행측은 회사가 빈껍데기인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가족들이 개인자금을 투입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경영정상화 의지를 의심하고 있다.
현재의 은행관리체제를 대주주의 경영권이 배제되는 법정관리로 바꾸려는 움직임도 이같은 맥락에서 거론되고 있다.
엄청난 채권을 가진 은행이지만 입장은 불리하다. 회사를 깨봤자 건질 수 있는 것은 84척의 노후선박뿐이기 때문이다.
오너측과 관리은행이 의기투합해도 회생될까말까한 부실기업인데도 양측의 불신은 깊다. 다행히 해운경기가 좋아 회사가 이만한 정도지만 머지않아 경기가 하강곡선을 그릴 때면 「부실」이라는 종기는 결국 터져 버리고말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심상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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