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개헌 차기 정부로 넘길 수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노무현 대통령이 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특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안성식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과 관련해 특별 기자회견을 했다. 1월 9일 대국민 담화를 포함해 벌써 세 번째다. 노 대통령은 8일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핵심은 조건부로 개헌안 발의를 차기 정부에 넘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노 대통령이 내건 조건은 두 가지다. 우선 각 당과 대선 예비후보들이 차기 정부에서 개헌하겠다고 공약하라고 했다. 또 합의나 공약엔 차기 대통령 임기를 1년 가까이 단축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고 했다. 각 당이라고 했지만 겨냥하는 목표는 한나라당이다.

특히 노 대통령은 이 같은 제안이 "현 정부 내 개헌이 최선이지만 차기 정부에서 개헌이 보장될 경우 차선으로 이를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개헌안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퇴로를 모색하려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결코 아니다"고도 했다. 오히려 노 대통령은 "이 제안에도 불구하고 아무 응답이나 조치가 없을 경우 개헌안을 발의하겠다"고 못박았다.

그래서 청와대 측은 한나라당과 대선 예비 후보들에 대한 "마지막 협상안이자 최후 통첩"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노 대통령은 개헌에 왜 이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청와대 핵심 참모들은 노 대통령 특유의 결벽이라고 설명한다. 한 관계자는 "대통령은 한번 옳다고 결정하면 누가 뭐라든 양보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대연정 때 그랬고, 진보 진영이 비판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그랬듯 개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개헌안 발의를 두고 "역사적 책무"라는 표현까지 썼다.

이런 노 대통령의 진정성은 청와대 밖에서 의심받고 있다. 한나라당이 특히 그렇다. 대선 예비후보 지지율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판이 흔들리고 변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새 흐름 탈 수 있을까=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이 조건부로 개헌안 발의를 유보할 수 있다고 한 건 일종의 양보안인 동시에 압박 카드다. 이래도 개헌 논의를 외면하겠느냐는 부담을 한나라당, 그중에서도 대선 주자들에게 안긴 셈이다. 그래서 공은 한나라당 측으로 넘어가는 모양새다. 한나라당의 반응에 따라 개헌 논의는 새 흐름을 탈 수도, 발의라는 외길 수순을 밟을 수도 있다.

다음은 기자회견 문답 요지.

-제안에 대한 응답은 언제까지 기다리나.

"긴 시간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 반응도 없으면 많이 기다릴 이유가 없다. 3월 중으로 가부간 판단 날 것이라 생각한다."

-조건을 걸었지만 퇴로를 모색하려는 것 아닌가.

"개헌 발의를 가지고 퇴로를 모색할 이유가 없다. 발의에 목적이 있다면 거침없이 발의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개헌 자체에 목적을 두고 있다. 1차 목표는 개헌 성사이고 안 돼도 발의는 또 하나의 의무다."

-열린우리당에는 협상할 후보가 없는데.

"열린우리당은 개헌에 기본적으로 찬성하는 만큼 후보가 나온 뒤에도 가능하다. 후보가 없다고 했는데 왜 없나. 여론조사상 지지도가 높지 않을 뿐이다. 지지도도 여러 번 엎치락뒤치락할 거다."

글=박승희 기자<pmaster@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