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사장은 관료 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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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한국전력 새 사장에 이원걸 전 산업자원부 제2차관이 내정됐다. 기업은행장에는 강권석 현 행장의 연임이 확정됐다. 정부는 7일 청와대 인사추천위원회 등을 거쳐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번에 공모한 5개 공기업 및 정부산하기관 공모직 사장에 모두 관료 출신이 내정됐다. 지난달 22일에는 유재한 전 재정경제부 정책홍보실장이 주택금융공사 사장에, 지난 1일에는 김종갑 전 산자부 제1차관이 하이닉스 신임 사장으로, 6일에는 박병원 전 재경부 제1차관이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내정된 바 있다.

◆관료 출신 대약진=우리지주와 하이닉스 사장 내정자는 각각 강력한 민간 후보가 면접에서 탈락하거나 다른 직책을 맡으면서 싱겁게 결론이 났다. 하이닉스에서는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이 최종 면접을 포기해 일찌감치 김 전 차관이 단독 후보로 내정됐다. 우리지주에서도 황영기 현 회장이 면접에서 탈락했고, 전광우 딜로이트 코리아 회장도 청와대 인사검증 중에 국제금융대사로 임명돼 박 전 차관으로 기울었다.

기업은행 강 행장은 장병구 수협 대표와 막판까지 경합을 벌였다. 그러나 장 대표가 청와대 인사검증 문턱을 넘지 못해 참여정부 들어 금융공기업의 첫 연임 행장이 됐다. 한전도 이 전 차관과 곽진업 현 감사가 끝까지 엎치락뒤치락했으나 청와대가 이 전 차관을 낙점했다.

관료 출신의 대약진은 이번에 사장을 공모한 공기업들의 최대 현안이 대부분 정부와 얽혀 있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우리지주와 기업은행은 민영화가 당면 과제다. 대주주인 정부 의중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주택금융공사는 증자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어서 돈줄을 쥔 재경부를 설득해야 한다. 청주공장 증설 문제를 안고 있는 하이닉스도 정부 도움이 절실하다. 한전 역시 전력산업 민영화가 숙제다. 이런 면에선 민간 전문경영인보다 관료 출신이 유리했다는 것이다.

◆공모제 실효성 논란=관료가 현직에서 바로 공모전에 뛰어드는 것은 처음부터 불공정 게임이라는 지적이다. 정부 입김을 무시할 수 없는 국내 풍토에서 현직 관료가 옷을 벗고 공모에 나서는데 민간 전문가가 대놓고 맞설 수 있느냐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지주 회장추천위에는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 대표 말고도 재경부 출신 위원까지 포함됐다. 하이닉스 사장도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채권단이 결정권을 쥐고 있었다. 이 때문에 공모는 시늉이었을 뿐 사실상 청와대와 관료의 나눠먹기였다는 극단적 비판도 나온다.

정경민.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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