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위크(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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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의 시사주간지를 절반으로 접어 저고리앞 왼쪽이나 오른쪽 호주머니에 찔러넣고 다니면 멋져보이고,그것을 멋으로 알던 시절이 있었다. 4·19,5·16등 굵직한 사건을 잇따라 겪은 한국이 심심치않게 세계뉴스의 표적이 되던 시절이었다.
별 생각없이 다만 편해서 그렇게 하고 다닌 사람도 많았겠으나 과시랄까 지적 허영심 같은 것이 적잖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었다.
뉴스위크도 그중 중요한 하나였다.
그 무렵 뉴스위크는 제2의 도약기를 맞고 있었다. 61년 워싱턴 포스트에 의해 인수되면서 뉴스위크는 편집전반에 걸쳐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다.
주간지로서는 최초로 베트남을 커버스토리로 다룬 것이 후일의 베트남 사태를 미리 예견하는 결과를 낳았고,세계적인 칼럼니스트 월터 리프먼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연봉 10만달러로 스카우트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칼럼 「월터 리프먼의 케네디론」을 격주로 실어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뉴스위크의 성가는 나날이 높아갔다.
매스컴학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시사주간지가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사회적 배경은 정치·경제등 모든 상황이 복잡하고 불확실할때,긴장상태에 있을 때라고 한다.
1923년 창간된 타임지나 그로부터 10년후 창간된 뉴스위크가 황색저널리즘을 누르고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당대의 시대상황과 관련된 측면에서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때 침체에 빠졌던 뉴스위크가 60년대 이후 제2의 도약기를 맞은 것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 시사주간지가 거두고 있는 성과에 비해 그들에 대한 한국에서의 반응은 보잘 것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 첫번째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언어의 문제였겠지만,이밖에도 한국에 관한 뉴스가 빈약하다는 점,그리고 5공때까지는 한국에 관한 민감한 기사들이 당국에 의해 삭제된채 배포 됐다는 점 같은 것들이 독자로 하여금 가까이 접하지 않게하는 요소로 작용했을 법하다.
세번째 이유가 해소된 상황에서 국제화 시대에 발맞춘 뉴스위크 한국판이 30일 창간됐다. 이제 뉴스위크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은 멋이 아니다. 뉴스위크를 읽는 것은 생활속의 작은 하나이기 때문이다.<정규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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